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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Jul 06. 2020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신도 인간도 정의롭지 않아, 나는 나의 응징을 하는 거야]

 엘렉트라는 복수와 응징을 위해 어머니와 그의 정부를 죽인다. 동생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를 종용하여 목적을 이룬다. 엘렉트라의 아버지 아가멤논 왕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의 새 배우자인 아이기스토스의 음모로 죽임 당했다. 그들은 오레스테스를 추방하고 엘렉트라는 가난한 농부와 결혼하게 만들어 변두리 움막에서 살게 한다.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힘을 잃고 오랜 시간 분노와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 두 사람은 재회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계획에 따라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돌아온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죽일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엘렉트라에게 어머니 살해는 복수이자 응징이고 불의로부터 해방됨이고 꿈의 실현이고 신탁이다. 아가멤논이 자기 딸을 죽였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어 그를 죽였다는 어머니의 해명은 통하지 않는다. “아내의 남편 살해가 정당하다면 자식의 모친 살해 또한 정당하니까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복수에 당위를 부여한다.


 <메데이아>나 <안티고네>와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비극 끝에 설명이 자리 잡는다. 제우스의 자식들이자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형제들인 두 사람이 돌연 등장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벌을 받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그들의 살해까지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모든 복수는 아폴론의 신탁이었으나 그것이 옳지는 않으므로 그들은 오레스테스를 추방한다. 그러나 해코지당하지는 않도록 지켜준다. 그리고 그는 훗날 재판에서도 무죄를 받게 된다.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친구인 필라데스는 둘이 결혼하라고 명을 받는다.


 비극이 그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설명하는 이가 등장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명령하고 알려준다. 더불어 예전에 일어난 일도 다시 설명해 준다. 나는 조금 당황스럽다. 저들이 불의로부터 고통으로 가득 찬 해방을 누리고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구절절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틀렸는지 듣고 있어야 한다니.


 <엘렉트라> 속 신은 모친 살해를 신탁으로 내릴 만큼 정의롭지 않다. 인물들 또한 자기의 욕망 혹은 복수를 품고 산다. 그 와중에 신이 갑자기 나타나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한다. “신으로서 인간 모두에게 명한다. 절대로 불의를 저지르지 말고, 거짓 맹세를 일삼는 자와 한배에 타지 마라.” 불의가 무엇인지 몹시도 헷갈리게 만들어 놓고 불의를 저지르지 말라고 한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위성과 정의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누구도 벌을 줄 수 없다면 엘렉트라의 분노는 어디를 향할 수밖에 없었을까. 신탁의 힘을 빌어 불의에서 해방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이것도 옳지 않고 저것도 옳지 않은 세상에서 정의를 찾을 수 없다면 나는 나의 응징을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닐까. 무엇으로, 무엇으로 인간을 평가할 수 있나.


 무엇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옳지 않음 사이에서 뭘 할지 선택하는 일은 어렵다. ‘신을 따르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 저자 에우리피데스의 세상에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휩쓸린다. 그가 살아 있다면 꼭 팔짱을 끼고 누워 세상을 관조하며 모든 신념에 ‘글쎄,’라고 말할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그의 글쎄 앞에서 나의 신념을 변명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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