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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7- 나는 번번이 무례하다

 콜카타의 뉴타운에서 지낸다. 서른두 시간의 기차 여행이 고단해, 한인이 운영하는 방으로 예약했다. 와 보니 새로 생긴 아파트의 21층 구석방이다. 여긴 기획 도시라 여태 본 인도의 도시 중 가장 신식이다. 구 년 전 인도에 왔었다. 교사 두 명과 십 대 열여섯 명 정도였을 거다. 세 달 가량 여행했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져서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를 수도 있다. 불려 온 택시를 타고 콜카타 중심부로 가면 찬찬히 환경이 바뀐다. 쭉 뻗은 길이 구불구불해지고 옷들은 점점 낡아지고 건물은 낮아진다. 누가 차창을 두드린다. 돈을 달라거나 물건을 팔겠다고 한다. 숙소로 가는 택시를 타면 반대로 바뀐다.


 드라마를 즐겨 본다. 뭐든 끝나는 걸 아쉬워하는 편이라 영화보다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야기가 비교적 늦게 끝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한국 드라마는 안전하다. 칼이 나오면 가려 주고, 심한 욕은 완만한 언어로 대체된다. 영화를 볼 때면 눈을 질끈 감고 옆 사람에게 “끝났어? 지나갔어?”라고 말할 때가 잦은데 드라만 그럴 일이 없다. 이 영상들이 내 꿈자리에 유해하지 않을 걸 미리 알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여행을 떠나 올 때 꼭 보고 싶은 몇 편의 영화만 메모리 카드에 담아 왔다. 드라마를 담기엔 무리가 있어서 포기했고, 담아 온 몇 편의 영화도 내가 안전하다 여기는 디즈니 작품이 대부분이다. 한 달 반쯤 다니다 보니 내게 편한 언어를 구사하는 예의 바른 미남들이 보고 싶었다. 넷플릭스를 결제했다. 작가가 고르고 고른 예쁜 말을 하는 미남들이 움직였다.


 택시를 타고 창 밖을 물끄러미 봤다.


“삼신할머니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나 세상 편하게 산 남자 저랑 놀 주제 못 됩니다.”


 지금은 불편해서 못 보는 어느 드라마 대사였다. 그래 다 랜덤이었으면 좋았겠다. 


 그랬으면 좀 덜 죄스러웠을까,
삼십 분이면 빈민촌부터 부촌까지 다 볼 수 있다. 그렇게 같은 동네에 산다. 어떤 사람은 평생 살아남기 바쁘고 어떤 사람은 평생 살아남기 바쁜 이들의 생계를 누린다. 탈이 나서 약 먹겠다고 삼시 세 끼 챙겨 먹는 게 죄스럽고 비 오 는데 우산 없다고 카페 가는 것도, 사는 동안 어떻게 살지 좀 알아야겠다고 다니는 것도, 그냥 내가 있는 것도 죄스럽다.


 마더 테레사의 천사의 집으로 갔다. 임종 직전의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다른 말로 죽음을 기다리는 집 이라고도 부른다. 거기 사는 할머니랑 손 잡고 가만있었다. 검지랑 엄지로 할머니 손 등을 주물 주물 놀았다. 살이 만지는 대로 오래 있었다. 엄청 살살 꼬집어 보면 살이 세모 모양으로 머물러 있었다. 무슨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살갗 일지, 이 이상한 동네에서 얼마나 오래 바빴을지 나는 짐작도 못 한다.


 드라마 속은 안전하다. 적정 선까지만 잔인하고 웬만하게 슬프고 재미나다. 내 사는 세상도 그런지 모르겠다. 드라마 마냥 안전하고 웬만치 슬프고 재미나고 적당히 잔인하고 그럴지도 모른다.


 여기도 사람이 많이 있다. 여기도 비가 오고 볕이 들고 구름이 지나다니고 그런다.


 아, 아 라고 말하면서 내 손을 잡겠다고 내미는 손이 아팠다.
함부로 아파하거나 불쌍해하지 말자고 했는데
나는 번번이 무례하다.


-18.8.14. 인도, 콜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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