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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6- 보살핀다는 것

 네가 아프다. 고열과 복통과 어지럼증과 두통을 앓는다. 여태 몸이 아픈 쪽은 줄곧 나였다. 잘 참고 잘 안 아프고 잘 견디고 잘 낫는 너는 줄곧 날 보살폈다. 내가 아플 적에 너는 해준 게 되게 많았다. 그러면서도 미안해했었다.

 지금은 네가 아픈데 나는 무능하다. 무척 미안하다. 너의 몸이 아픈 건 전부 너의 몫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책의 초반부,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의 배우자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순간 제일 먼저 거기로 갔던 소방관이었다. 다들 단순 화재인 줄 알았댔다. 그는 그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몸에 착용하지 않고 발전소로 달려갔고, 이후에도 그를 보호해 주는 건 없었다. 그녀는 온몸을 다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배우자를 만났다. 임신한 상태였다. 병원 사람들은 그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방사능 덩어리라고 했다. 그녀는 매일 그를 찾아가 보살폈다. 만지고 말 걸고 돌봤다. 임신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다고 격리되었을 때도 방법을 찾아 그를 쫓았다.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네가 아프니 이 사람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롯하게 사랑하고 보살피고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보살피는 것에 관해 생각하면 나의 미달한 부분들이 도드라진다. 고열로 온 몸이 뜨거운 너를 힘껏 안지 못한 것, 어제 밥을 세 그릇이나 먹도록 둔 것과 같은 것들이 자꾸만 후회된다. 가엾고 몸집 큰 너는 내 곁에 쪼그리고 잠들었다. 언제쯤 누굴 잘 보살필 수 있을까.


 인도 병원에선 주사도 안 주고 링거도 안 준다. 오전에 갔는데 약 받고 검사하고 저녁에 다시 오래서 갔더니 자긴 다른 의사라면서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그래도 건강한 체질이라 조금 빨리 회복하는 듯해서 다행이다.


 내년이 되면 너랑 같이 체르노빌에 갈 거다.


-18.8.14 인도, 콜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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