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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8- 여기서 사는 게 왜 좋은 지 생각한다는 것

 오로빌에 있을 때 어떤 가족을 만났었다. 24개월 된 애기 한 명과 부부였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철학자였는데, 오로빌의 핵심 사상과 사상가에 대해 연구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언제 이런 말을 했다.


 “오로빌에 사는 게 왜 좋은 지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저번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자유분방함. 보통의 공동체들은 지켜야만 하는 이념과 규율이 있는 반면에 여긴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어제 찾은 또 다른 이유는 하고 싶은 걸 하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여기 왜 있는지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매우 중요해 보였다. 여기서 사는 게 왜 좋은 지 길게 고민하는 것. 나도 그걸 시작해 봤는데 생각이 안 났다. 콜카타 생활엔 좋을 게 없었다. 어젯밤엔 말라리아 약을 먹었는데 알약이 너무 컸는지 목구멍부터 명치께 까지 새벽이 되도록 아팠다. 음식들도 그저 그렇고 이런 부자들 아파트는 낯설다. 아무래도 얼른 다른 데로 가야겠다.

 여기서 사는 게 왜 좋은 지 생각하는 건 결심하게 하는 일이었다. 수고롭지만 나도 이걸 길게 좀 생각해 봐야지 싶다. 여지껏 지나간 것들이 왜 좋았는지 생각하기 바빴다. 밥이나 사람들이나 공간 같은 것들. 기억은 늘 촘촘해서 아쉽고 그립고 그렇다. 맨날 지난 것만 또렷해지는 게 참 싫다. 24개월 된 애기는 지금을 제일 중요히 여겼다. 조금 있다 혹은 아까 전에 같은 건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지금을 살면서 한 사람 몫을 해 냈다. 그 세 가족은 셋 다 그랬다. 지금 맘에 든 건 지금 사고, 오늘 면이 집에 있으니까 모두를 초대해 면을 먹고, 여기가 왜 좋은 지 계속 생각하고, 지금 들뜨고 신이 나니 맘껏 소리 지르기도 했다. 그 셋의 시간은 빼곡했다.


 셋과 같이 보냈던 낮과 저녁이 그립다. 별 수 없나 보다. 맨날 지난 것만 이렇게 또.


-18.8.15. 인도, 콜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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