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리멀리 Jul 27. 2021

38- 죽여도 되는 풀

 시급이 높고 비자받기가 어렵지 않은 나라를 골라서 호주에 왔다. 북부 시골마을에 농장과 연계해 일자리를 구해주는 호스텔에 묵었다. 일자리를 기다리는 일용직 이주 노동자가 되었다. 이틀 정도 기다린 다음 라임 농장으로 출근하였다. 살을 까뒤집는 햇볕과 더위 속에서 하루 여덟 시간 동안 라임을 땄다. 라임 나무는 가시나무였다. 팔이 자꾸 긁혔다. 캥거루 백이라고 부르는 자루를 메고 배 앞으로 늘어뜨렸다. 앞으로 멘 배낭처럼 생겼는데 라임이 가득 차면 무척 무거워졌다. 뒤뚱뒤뚱 나무를 살폈다. 크기와 색깔에 따라 따야 할 라임과 버려야 할 라임, 아직 따면 안 되는 라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마구 따면 안 되었다. 괴팍한 농부의 농장에서는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감시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을 해고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갔던 곳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라임 농장일은 사흘 짜리 일이었다. 나는 다시 일자리를 기다렸다.


 그다음에는 아보카도 농장에 갔다. 처음 했던 일은 어린 나무들을 잘라 붙여 동여매는 일이었다. ‘그래프팅’이라고 불렀는데,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접목이었다. 나뭇가지의 속살을 날카롭게 발라내는 일이 핵심이었는데 숙달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느리다는 이유로 잘릴 뻔했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아보카도 나무는 접목하지 않으면 시중에 내다 팔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빨리 자라는 나무와 열매를 맛있게 맺는 나무 두 그루를 합쳤다. 접목된 나무는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 잘 붙어서 건강한 한 그루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죽을 수 있었다. 나무들이 많이 죽으면 나는 다시 해고의 위기에 놓일 것이 분명했다. “제발 잘 자라줘.” 정성껏 봉한 다음 내가 자주 했던 말이었다.


 접목에 필요한 시간은 두 달이었다. 몇 주가 지나니 끝이 보였다. 그러자 그곳에 내가 필요 없게 되어 나는 이미 자라나 열매를 맺는 나무들에게로 보내졌다.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장갑과 마스크와 보안경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밭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이랑에는 풀이, 고랑에는 나무가 많았다. 새벽의 풀들은 물을 아주 많이 머금어서 신발과 그 안의 양말까지 푹 적셨다. 작은 열매가 매달린 나무들 사이에 트랙터 한 대와 스티브가 서 있었다. 스티브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줬다. 트랙터 뒤에 길게 이어진 호스를 들고 걸으면서 풀에 뿌리는 일이었다. 필요치 않은 풀을 죽이는 작업이었다. 아보카도 나무에 약품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자란 풀에 제초제를 뿌려 말려 죽이면 되었다. 지금은 그냥 물을 뿌리는 것처럼 보여도 사흘 뒤면 풀들이 노란색으로 변하고 곧 마른 풀이될 거라고, 그러니 줄을 따라 걸으면서 제초제로 충분히 풀을 적셔야 한다고 배웠다. 잔인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며칠 전까지 해고되지 않기 위해 나무들에게 잘 자라 달라고 부탁했는데 며칠 후에는 해고되지 않기 위해 땀 흘려 풀을 죽였다. 텃밭에서 김매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보존과 파괴는 철저히 인간 농부의 권력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를 죽이지는 않겠지만 나의 필요와 불필요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저 풀들은 죽여도 되는 풀들인가, 나도 불필요해지면 언제든 버려져도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닌데.’ 생각하며 호스를 들고 제초 작업을 이어갔다. 시간이 좀처럼 흐르지 않았다.


 다행히 그 농장에서 잘리지는 않았다. 몇 주 뒤 바로 옆 바나나 농장의 관리자가 동의 없이 나를 촬영했다. 내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다고 한다. 그는 다른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줄곧 그래 왔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보스에게 보여주겠다고 협박해 왔었다. 나는 사무실로 가서 문제를 제기했고 그에게 주의를 주는 것 외에 해결되는 것이 없자 그만두었다. 그 후로 나는 고집이 세다고 소문이 났다. 좀처럼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았다.


 노동 시간이 짧은 일이나 며칠 짜리 작업에 불려 갔다. 그런 농장들에서도 선택해야 했다.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작물과 아닌 작물을, 버려야 하는 작물과 남겨두어야 하는 작물을 가려내야 했다. 나는 자꾸만 자격을 물었다. ‘내가 이래도 되나?’. 풀을 죽이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대규모의 농업 속에서 인간은 지속적으로 파괴를 일구고 있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생각났다. 그는 윤리적으로 삶을 지속하려면 삶을 중단해야 하는지 물었다. 무엇도 죽이지 않고서 살 수 있는지, 죽이지 않으려면 죽어야 하는지, 죽으면 왜 안되는지 집요하게도 물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 햇살과 물 만으로 사는 나무가 되려고 하는 주인공 영혜의 시선이 제초 작업을 하였던 나의 물음과 닿았다. 나는, 인간은 해 끼치지 않고서 살 수 없나. 나무처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다가 죽고 싶었다. 이렇게 돈을 받고 풀을 죽이지 않고, 필요 없어지지 않으려 애쓰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 한 부분이고 싶었다.


 누군가 나의 필요와 불필요를 값으로 매겨 고용하는 것이 구조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값이 매겨지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는 풀과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나는 비슷하였다. 나는 딱 24.36불어치 노동력이었다. 나는 딱 그만큼 필요하다가 필요 없어졌다. 돈을 벌러 간 건 맞지만 돈 만으로 매겨지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돈 만으로 매겨져도 되는 존재는 없다. 3불짜리 바질도 흙에서는 싱그러운 풀이었다. 나는 굳이 밭의 싱그러운 풀을 떠올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바닷속 고래처럼 유유히 헤엄치다가 유익을 주면서 사라지고 싶었다. 어쩌다 인간으로 태어나버려서 해를 끼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고래가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그러니 애쓰기로 하였다. 노동력과 그 값을 등치 시키지 않기로, 제거되었을 생명들을 떠올리기로, 끊임없는 미안함을 갖기로 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37- 시시때때로 듣는 여행길의 명언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