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 팀은 말 안 해도 알아서 할까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따뜻한 햇살이였다

by 수풀림

박 팀장은 궁금하다.

자기가 그렇게 세게, 확실하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팀원들이 자기 말을 도통 안 듣는지. 얼마나 더 강하게 얘기하고 소리를 질러야 알아 들으려나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고민하던 박 팀장 눈에, 옆 부서 최 팀장과 팀원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면서 떠들고 있다. 화기애애한 모습에 잠깐 부럽기도 했지만, 이내 다른 마음이 든다.

'쯧쯧, 팀원들이랑 저렇게 노닥거리면, 나중에 엄청 무시나 당하지.'

박 팀장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팀장의 권위를 보여줘도 모자랄 마당에, 팀원들 옆에서 실실 쪼개며 웃고 있는 최 팀장의 모습이라니. 라떼 시절을 소환해보니, 전무님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사무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호통을 치시거나 결재판을 던지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와 대조해보니 지금 상황이 얼마다 더 말세처럼 느껴지는지.


한 달 후 팀별 실적 발표 시간.

박 팀장은 바닥으로 떨어진 실적 때문에,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반면 최 팀장네 팀 성과 그래프는 상승 곡선이다. 덕분에 전무님의 무한 신뢰와 칭찬의 눈빛도 받았다. 올해 실적 견인의 주요 원인이 뭐냐고 묻는 전무님의 질문이 이어지자, 겸연쩍어하며 대답을 했다.

"음...이 성과는 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주도한 팀원들이 이뤄낸거라 생각합니다."

분기 발표 때문에 화가 난 박 팀장은 바로 팀원들을 소집했다. 전무님한테 혼난 것 더하기 자신이 받은 모욕의 감정까지 얹어 팀원들에게 퍼부었다.

"내가 지난 달부터 강조 했어, 안했어? 실적이 없으면 발로 뛰는 척이라도 하라고 했잖아!"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린 박 팀장은 담배를 피우러 갔다. 담배 연기에 자신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그 자리에는 마침 최 팀장도 있어, 슬쩍 물어봤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 거긴 에이스 팀원들만 뽑았나봐. 하나같이 다 잘 하는 거 보니."

최 팀장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제대로 얘기를 안 하는 최 팀장이 답답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박 팀장은 우연히 최 팀장의 팀 미팅 내용을 듣게 되었다.

텅 빈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문 틈 사이로 옆 방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사실 궁금했다. 실적의 비결이 도대체 무었인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 아닌가.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자신의 팀원들은 회의 시간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었는데, 여기는 달랐다. 한 가지 더 이상한 건 최 팀장의 태도였다. 팀원이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냈는데도,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

"이 선임이 낸 의견 직접 디벨롭 시켜서 다음 기획 회의에 가져와봐요. 김 책임은 아까 말한 거 한 번 실행해보고."

만약 자신이었다면 단박에 잘랐을 건데, 저딴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 팀장이 그렇게 말하자, 팀원들은 알아서 업무의 타임라인을 정하고 다음 미팅 일정을 잡았다. 자기가 물어봐야만 겨우 대답하는 자신의 팀원들과는, 한참이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밝게 웃으며 회의실을 나오는 최 팀장 팀원들을 보며, 박 팀장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팀원들이 그동안 조용했던 이유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일찌감치 터득했기 때문이라는 걸. 괜히 말했다가 잘릴 바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안전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게 자신과 최 팀장의 가장 큰 차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내가 말을 못 하게 만든 거였네."

조용해진 회의실 복도를 걸어 나오며, 박 팀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북풍이 아니라 햇살이었듯, 팀을 움직이는 것도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온도라는 사실을 박 팀장은 뒤늦게 배웠다. 알아서 잘 하는 남의 팀원들을 부러워하기만 했지, 그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박 팀장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다 말고 잠시 손을 멈췄다. 이제 뭘 어떡해 해야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느껴진다. 자신이 했던 방식으로는 절대 팀의 변화와 성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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