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고뇌 내가 다 짊어진 듯
어느 날 팀장 회의를 하던 도중, 갑자기 A 팀장이 질문했어요.
"나만 열내면서 얘기하는 건가?"
그 질문에 저만 뜨끔한 건 아닌 것 같았어요. 다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멋쩍게 웃어넘겼죠. 곧 열릴 사내 행사에 어떻게 참석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사실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당장 눈앞에 처리해야 할 업무도 쌓인 마당에, 굳이 추가로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디어 모이면 대충 나눠서 빨리 처리해 버려야겠다, 딱 그 정도?
하지만 A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어요. 미팅을 리딩하고, 끊임없이 더 좋은 방안을 내고, 이것저것 해보자며 우리를 부추겼죠.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디테일을 체크했고, 한 번 나온 아이디어도 누가 할 건지 끝까지 확인했어요. 분위기상 슬슬 정리해도 될 타이밍이었지만, A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죠
그렇게 열을 올려 말하다가, 어느 순간 느꼈나 봐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온도 차이를.
A는 이번 미팅뿐 아니라,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었어요. 누구보다 열심이었죠. 그 모습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생각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도 들었어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피곤한데 그냥 넘어가고 싶다...)'
회의가 끝나고 A와 따로 남아 못다 한 얘기를 하는데, 다시 물어보더군요. 자신이 정말 이상한 사람인건지, 자신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등등을요.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잠깐 망설이게 되더군요. '너무 신경 쓰지 마'라거나 '에이, 아냐~' 혹은 '조금 힘 빼도 돼' 같은 말이 입에 맴돌았지만, 쉽게 나오진 않더라고요.
A의 모습에, 예전 제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요. 제가 맡은 프로젝트 회의를 할 때면, 나만 엄청 진지한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화날 때도 많았어요. 왜 깊게 고민하지 않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죠. 대충 일하면 안 좋은 결말이 날 것 같은 불안감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만나, 늘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어요.
당시 저의 마음과, A의 마음은 비슷했던 것 같아요.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열정. 그 두 가지가 만나면 자연스럽게 진지해질 수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쳐가는 또 하나의 업무'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니까요. 책임감과 열정의 크기가 클수록, 그 일은 더 무겁게 다가오고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만약 이때 다른 사람들 참여나 반응이 뜻뜨미지근하면, 그 마음은 더 증폭되죠.
'진지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참되고 착실하다'라고 해요. 일을 대하는 진지함은 회사와 동료들이 인정해 주는 미덕이자, 일이 더 잘 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예요. 하지만 이런 진지함도 문제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모든 일이 그렇듯, 너무 지나칠 때 말이죠.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해야만 넘어간다던가, 굳이 이렇게까지 힘쓰지 않아도 될 일에 지나친 에너지를 쓴다든가 하는 순간에요. 이렇게 되면 진지함은 어느새 ‘성실함’이 아니라 ‘피곤함’으로 변질돼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부담을 느끼고 슬슬 피하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바로 균형 잡기예요. 생각해 보세요. 미덕이라 칭송받는 책임감과 진지함마저도, 지나치면 부담과 피곤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잖아요. 그 사이에서 어떨 땐 진지해야 하고 어떨 땐 아니어야 할지, 그 절묘한 지점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눈치를 봐도 잘 안 보이고, 기준이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에게 주어진 진지함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어디에 쓸지 고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 말이에요. 모든 일에 '강강강'의 강도로 진지하게 접근하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 있잖아요. 그러니 평소에는 적당히 힘을 빼고 있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모든 진지함을 집중시키는 게 더 현명한 거죠. 그런 순간이 언제인지를 파악하는 건 단기간에 되지는 않을 거예요. 경력이 쌓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경험에서 얻은 것들을 내제화시켜 나만의 데이터로 축적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는 상사나 동료들에게 일의 경중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또 나만 진지한가?'라고 느끼는 순간이 와도, 그걸 지나치게 자책하지는 말자고요. 그 진지함 자체는 정말 소중한 자원이니까요. 다만 그 자원을 언제 어떻게 쓸지 선택하는 거죠.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가면서요.
그래서 오늘은 진지함을 탓하기보다, 필요할 때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떠올려보면 좋겠어요. 언제 힘을 주고, 언제 숨을 고를지를 아는 사람이 결국은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