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설렘 사이
대학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졸업한지 20년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그때는 분명 학교가 지긋지긋해 회사로 도망쳤는데, 돌고 돌아 다시 강의실 앞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가한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을, 이번에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간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 공부는 '내돈내산'이라는 점이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학교 장학금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내 돈으로 등록금을 냈다. 수능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정할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과를 마음대로 골랐다. 심지어 금쪽같은 토요일 시간까지 빼서, 학교에 갖다 받치기로 결심했다. 맞다. 모든 게 온전한 나의 결정이었다.
갑자기 학생이 되기로 마음 먹은 데는, 직장생활을 하며 찾아온 뒤늦은 사춘기가 한몫했다.
이 길이 내 길인가,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등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시끄러웠다. 20년전 배운 전공과목으로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지만, 앞으로 20년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답을 찾는데만 10년이 걸렸다. 나를 찾는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학교에서는 정해진 공부만 하면 됐는데, 밖의 세상은 달랐다. 시행착오를 하며 부딪히고 경험하며 내 길을 찾아야 했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 찾은 답이 '정답'이라는 보장도전혀 없긴 하지만 말이다. 인생은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 흘러갈 것이고, AI와 전쟁같은 외부 요소가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배움의 길을 택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 2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을 때 느낀 신선한 자극 덕분이다. 1분씩 돌아가며 짧은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평소에 회사를 다니며 만나기 쉽지 않은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만으로도 신기했다. 벤처기업 대표도, 목회자도, 30년 차 HR 전문가도, 20년 차 강사도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학생이 되어 있었다.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인정받는 사람들이 또다시 배움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 그런 그들이 배움을 대하는 태도도 사뭇 진지해, 적당히 다니다가 힘들면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으로 온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평균 나이 4-50대, 직장과 학교 생활 병행, 기존 전공과 무관한 새로움 배움의 길.
회사, 집, 회식, 야근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며 살던 우리가, 토요일마다 모두 강의실에 모인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내가 원하는 나다운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서 말이다.
20년 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졸업하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이 배움이 내 삶의 즐거움과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 때는 답을 외우느 바빴지만, 이제는 삶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번 주 토요일, 드디어 첫 수업이다. 오랜만에 노트를 챙기며, 나는 조금 들뜬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열 것이다. 이번에는 졸업장이 아니라 방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내 삶의 다음 장을 시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