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체력과 의욕의 상관관

by 수풀림

나는 원래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출근길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추천해준 영화도 보고 싶고, 서점에 나왔다던 신간도 읽고 싶고, 요즘 유행이라는 크림카레당면도 만들어보고 싶다. 회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전시회에서 감명깊게 본 아이디어를 적용해보고 싶고, 대학원을 다니며 배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출근길에 활짝 핀 벚꽃을 보며, 가족과 주말에 어디로 꽃구경을 가야할지 생각한다.

하여간, 별건 아니지만 내 머릿속은 늘 하고 싶은 것들로 꽉 차있었다.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바뀌고, 새로이 알게된 반짝이는 것들을 언젠간 꼭 해보리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고 살았다.


그렇게 늘 의욕에 넘쳐 살다가, 며칠 전 갑자기 아팠다.

열이 펄펄 끓고 몸져 누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으슬으슬 한기가 돌고 몸이 무거웠다. 환절기 감기 때문인지, 무리한 일정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냥 하루 이틀 쉬면 나을 것 같았는데, 벌려놓은 일과 학업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하필이면 회사는 바쁠 시기였고, 올해부터 시작한 MBA 과정은 몇 번 빠지면 낙제라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에 출근했지만, 물 먹은 솜처럼 몸이 축축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학교도 빠질 수 없어 나갔지만, 이전과 달리 수업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해야할 일들은 산더미 같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손 하나 까딱하기도 싫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의욕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과하게 작용해서, 그게 내 성격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몸이 꺼지니, 의욕도 같이 꺼졌다. 의욕은 체력이 받쳐줄 때만 따라오는 거였다.

아프고 나니, 문득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유독 의욕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동료, 늘 축 처져 있는 것 같았던 사람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됐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한편으로는 그들이 게으르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파 보니 그 사람들도,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몸이 지쳐있어 그랬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욕만으로는, 그 사람의 상태를 다 알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는 때론 너무 쉽게 말한다.
조금만 더 힘내보라고,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라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의지를 다잡아야 한다고 남들을, 그리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러나 무기력은, 때론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만큼 지친 날이 지속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이제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 뒤에 어떤 하루가 있었는지, 어떤 상태로 버티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 속에서,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만약 당신도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애꿎은 마음을 탓하기 전에 내 몸을 먼저 돌아보라 조언하고 싶다. 잘 쉬고, 충분히 회복하는 것. 그게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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