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절히 꿈꾸던 직장, 그 다음 이야기

여기가 꿈의 회사인 줄 알았다

by 수풀림

지금 나는 꿈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십여년 전의 내가 간절히 바래왔던 곳. 여기만 들어가면 모든 가능성이 펼쳐지리라 믿었던 곳 말이다.

첫 직장은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대리점 형태의 중소 기업이었다. 종종 해외 본사 직원들이 한국에 방문해 비지니스 미팅을 하곤 했는데, 당시엔 그들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영어로 쏼라쏼라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제스쳐도,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도마져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때부터 꿈을 꿨다. 꼭 저 회사에 들어가리라. '있어 보이는' 근사한 커리어 우먼이 되리라.


그로부터 5년 후,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드디어 기대하던 외국계 회사 직원이 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큰 회사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회사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나같은 경력 신입들은 별다른 교육 없이 방치되었고, 회사 시스템은 엉망진창이라 엑셀로 업무를 해야 했다. 절망적이었다. 꿈의 직장은 커녕, 푹푹 꺼지는 진흙탕이었다.

그때부터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 지사가 아닌, 해외 본사의 아시아 담당자가 되어야겠다는.


주변의 도움과 운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아시아 담당자가 되었다.

내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 같아 무척이나 뿌듯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내 실력이 아직 못 미쳐서 등등의 이유로.

그렇게 회사를 떠난 뒤, 몇 달을 백수로 지냈다. 꿈이 깨지고 나니 허무했다. 반면 왠지 이 회사 말고 더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원서를 내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예전 회사에서 다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망설임 끝에 돌아오게 된 회사는 신기하게도 예전과 똑같은 곳인데 조금 다르게 보였다. 회사 시스템은 여전히 갖춰져 있지 않았고, 크고 작은 사건들로 조직은 늘 불안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떠난 자리가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했고, 예상하지 못한 역할이 내게 주어지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단점으로만 보였을 빈틈들이, 이번에는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내가 찾던 완벽한 직장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저기에 가면 내 꿈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그 믿음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더 나은 곳을 상상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나를 기대하게 해주었으니까. 다만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었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느냐 보다는, 어떤 자리에서든 내가 배울 것을 찾고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절히 바라던 꿈의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 동화의 결말처럼, 어쩌면 그토록 찾아 헤맨 파랑새는 처음부터 멀리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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