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by 수풀림

"어떻게 그 시기를 버티셨어요?"

회사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조직개편의 칼바람이 폭풍같이 몰아치던 시절, 상사와 최악의 궁합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던 시절, 마음속으로는 퇴사를 벌써 백번도 넘게 했던 그 시절에 대해서...

질문을 들으니 힘들었던 그 때가 생각나며 만감이 교차했다. 당장 뛰쳐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을 견뎌낸 힘은 뭐였을가. 이직 자리를 찾을 여유도 없었고, 무작정 그만두자니 다른 대책도 없긴 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들 때문에 버틴 것 같아. 전우애랄까? 하하하."

무너져가던 나를 잡아주던 감사한 동료들 덕분에 나는 무사히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문득 어릴 적 동화책으로 접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떠올랐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고 우리는 그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결말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거창한 제목에 이끌려 읽었다가, '에이, 뭐야. 사람이 살아가는 게 고작 사랑 때문이라고? 시시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는데, 이제는 그가 왜 그렇게 썼는지 조금은 알겠다.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살린 건, 승진도 연봉도 아닌 바로 사람이었다. 마음 속에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람을 구원한 것이다. 그들이 건넨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괜찮냐고 나를 살피는 안부인사, 커피타임에 슬쩍 건네는 위로, 힘들다고 징징댈 때 내준 그들의 시간.


얼마전 만난 선배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해서, 맡은 프로젝트마다 번번히 실패해서 괴로워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에게 위로를 건넸을 때, 그가 말했다.

“25년 회사 다니면서 제일 힘들 때가 언제였는지 알아?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였어.”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 딱 한명만 있어도 버틸 힘이 나더라. 지난 프로젝트 잘못되었을 때도, 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다시 시작해보자고 동료가 얘기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거야."

그는 자기를 일으켜준 그 친구 덕분에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다시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와서 독자분들께도 물음을 건네본다.

'직장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모두 직장인으로서 더 높은 연봉과 화려한 성취, 그리고 여러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을 바란다. 그런데 정작 가장 힘든 순간, 우리를 버티게 해준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누군가 건넨 따뜻한 공감과 위로 한 스푼을 섞은 말 한마디와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걸 못 알아보는 회사가 바보라고 말해주는 동료의 너스레가 우리를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 앞에서 무너질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가능성을 믿어주면 다시 걸음을 옮길 힘이 생긴다. 사랑과 믿음이 밥을 먹여주지는 못할지라도,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기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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