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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Feb 02. 2024

팀원이 구급차에 실려간 날

건강하세요 여러분

외국 본사 높으신(?) 분들의 한국 방문으로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학창 시절 교육감님이 학교를 오신다거나, 부대에 대대장님이 시찰을 오신다거나 하는 느낌이랄까.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모두 다 점검하고 챙기고 준비할 것 투성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도, 나는 컨퍼런스 콜 리허설을 위해 회의실에 처박혀 있었다.

동료로부터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리허설을 끝내고 나와 그제야 전화기를 확인했다.

뒤늦게 다시 전화를 걸자 동료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팀원이 지금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급차라니? 지금 농담하는 건가?

부리나케 사무실로 가보니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한 20명 모여 있었고, 나의 팀원은 구급차 들것에 실려 떠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동료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배경 설명을 덧붙인다.

상황을 짧게 요약하자면, 팀원이 갑자기 자기 자리에서 허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다며 다른 동료에게 SOS 전화를 했고 이 상황을 같이 지켜본 옆 자리 동료들이 하나둘씩 몰려왔다 한다.

하지만 여러 동료들의 도움으로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팀원을 보고,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 다른 동료가 결국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걸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다행히 의식은 말짱해 말도 잘했고 움직이는 것만 어려운 상황이라, 병원 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러 명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순간,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며, 나의 이성과 영혼이 유체이탈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찾아온 감정은, 극한의 허무감이었다.


오후 5시쯤 팀원이 구급차에 실려갔는데, 나는 이날 저녁 8시까지 회의가 잡혀 있어 바로 다음 회의를 참석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팀원이 실려가자 '회의가,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허무함의 폭풍이 밀려왔다.


일말의 책임감으로 회의를 참석할 수밖에 없었지만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회의 주제에 대한 생각 회로가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몸은 회의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팀원에 대한 걱정과 이 와중에 일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혐오에 빠져 속으로 울고 있었다.


다행히 회의 도중인 7시쯤, 구급차에 보호자로 동행해 준 동료가 전화를 걸어왔다. 팀원이 방금 X-ray를 찍었고, 허리 디스크라 그랬던 거라며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급한 대로 소염제를 처방받고 괜찮아져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고 했다. 나는 회의고 나발이고 다 내팽개치고 팀원의 차가 주차된 지하 주차장으로 가 그제야 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팀원을 보고 일단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잠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동료가 보여 목례 인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허리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났고, 극심한 통증을 느껴 자리에 주저앉아 괜찮아지기를 기다렸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한다.


자신이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팠던 건 맞는데, 들것에 실려나갈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아니, 무엇보다도 사람이 백만 명쯤 있는 사무실에서 주목을 받으며 들것에 실려나가니, 너무 쪽팔려서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아픈 것보다 쪽팔린 게 더 싫었다며! (아, 왠지 폭풍 공감)


의식은 멀쩡한 것 맞았네. 하하하....

내가 최대치로 우려했던 상황과는 달리, 강한 소염제를 먹고 자기 괜찮다며 너스레를 떠는 팀원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나왔다.

내 눈물을 보고 팀원도 같이 울먹였다. 우리는 이날의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 못다 한 수다를 떨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사실 팀원도 나도 1월부터 회사일이 바빠져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업무 능력이 있었던 팀원은,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일에 할애했다.

그러다가 이 사달이 났다.

당연히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허리는... 멀쩡할 수 없다. 나의 경험담이자, 현재 진행형 고민이기도 하다.


나는 팀원을 보며 짠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 사실은, 어느 하나라도 잃어보지 않으면 절대 쉽게 알 수 없다.

아니, 자기가 직접 아파봐야만 잘 알 수 있다.




나의 팀원은 참 해맑게도, 허리가 아프긴 하지만 미리 예약해 둔 해외여행은 꼭 가겠다고 한다.

허리 디스크 시술에 들어가는 주사약을 2-3배로 맞고, 17시간 비행기를 타고, 추리닝을 입고 하루에 2만보씩 걸어 다닐 예정이지만, 그래도 꼭 간단다.


원래부터 모험과 여행을 즐기는 성향이라 누가 돈 주고 말려도 갈 것 같기는 하다. 아니 지금쯤이면 이미 비행기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엄청난, 회사에서 구급차에 실려간 대박 사건의 주인공이 이래도 되나 싶어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나오는 한편, 또 다시 아플까 봐 걱정도 된다.


동전에는 양면이 존재하듯, 이번 사건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나에게  나와 우리 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업무가 과중된 건 아닌지, 우리 팀의 일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을 챙기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일이 많아 야근 당첨이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 다짐해 본다.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자. 나와 팀의 건강을 챙기며 살자!


"여러분, 건강 잘 챙기세요!"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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