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Feb 23. 2024

퇴사가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지...

나는 어떤 고생을 할 준비가 되었나

최근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퇴사, 퇴사, 퇴사!


퇴사는 나에게 달콤한 초콜릿이자, 동화 속 파랑새의 유혹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나를 가두는 감옥이라면, 퇴사 너머의 세계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일명 '퇴사에 대한 환상, 아니 환장!'.


나는 왜 이렇게 퇴사를 동경하지? 하필이면 지금이어야 하지?

꽉 찬 만두소처럼 가득 찬 퇴사 욕구를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떠오르는 대답은,

지금 하는 일이 루틴이 돼버려서 재미가 없다

이 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 가끔 부당하고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가 주체적으로 계획/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우선으로 해보고 싶다

직장은 유한하고, 직업은 무한하다 (빨리 직장인 말고 직업인으로 살고 싶다)

가슴 뛰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이렇게 몇 년 더 살면 100프로 후회할 것이다





사실 17년의 회사원 생활에서 세 번의 퇴사와, 2년 남짓한 백수 생활을 경험해 보았다.

첫 번째 백수 생활은 육아휴직을 가장한 아이 돌봄과 미국 생활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백수가 진짜배기였다. 아예 이 업계와 절연을 선언하고 대책 없이 그만뒀으니 말이다.


당시 내가 동경했던 커리어의 최고 목표였던 아시아 담당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토록 해보고 싶은 자리였는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가니 스스로 너무 못나보였다.

2개월 만에 그만두겠다는 나를 매니저가 잡아 결국 1년을 가까스로 채우고 퇴사했다. 당시 나는 회사를 다니며 힘들다고 우는 사람들을 이해 못 했는데, 이 기간 동안 평생 회사에서 쏟을 눈물을 다 흘리고 나왔다.


맞다.

나의 퇴사는 남이 봐도, 내가 봐도 도피였다. 하지만 퇴사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같았다.

옆에서 누가 뭐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도, 자신감과 자존감은 저 바닥을 뚫고 더 내려갈 곳이 없었다.


퇴사를 하고 나니 숨 쉴 구멍이 생겨 좋았다. 딱 두 달 동안은...

세 달이 넘어가고 막상 할게 없어지자, 업계 절연을 셀프 취소하고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력서를 내도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전 직장에서 다시 불러 돌아가기까지 9개월의 시간 동안, 나의 자존감은 더 떨어졌다.

아무 곳에서도 나를 찾지 않았고, 돈은 떨어져 가고, 앞으로 뭘 해야 될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갈지라도, 나는 또 퇴사를 택할 것이다. 

당시에는 정말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고 다시 돌아가도 못 견딜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결정에서 하나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대책 없이 퇴사한 것이다.

그냥 힘들다고 도망쳐 나와 버린 것이다. 조금 적극적으로 나의 다음을 알아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예전 퇴사와 백수 경험과, 지금 나의 퇴사 욕구를 가만히 비교해 본다.

분명 나는 대책 없이 퇴사한 것을 후회했는데, 지금은 애써 예전 기억을 밀어놓은 것 같다.

마치 퇴사만이 정답인 것처럼 빠른 행동으로 옮기기를 희망하고 있다.

퇴사는 환상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믿기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글을 쓰며 깨닫는다.

퇴사 자체가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퇴사가 도피처가 아니라, 새 출발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출퇴근길 우연히 보았던 유튜브 강의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문장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고생을 감내할 준비가 되었는가이다



지난주 남편에게 퇴사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다가 '간절함'에 대한 단어로 펀치를 맞았는데, 이번에도 같은 맥락이었다.

사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누가 말려도 사서 고생을 하며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퇴사가 목적지가 아니라, 퇴사 이후의 인생 목표와 계획이 명확한 사람은 내적 동기가 충만할 것이다.

기꺼이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반짝거리며 빛나는 북극성을 보며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니 나는 퇴사 이후의 삶에도 막연한 동경만 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두려움도 있다. 

동경과 두려움 사이의 인생 결정이 늦어질까 봐 안절부절만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이 글은 퇴사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본다.


마지막으로는 퇴사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치열하게 한번 더 생각해 보시라는 조언과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본다.


아... 퇴사가 마려운 밤... 글은 안 써지는데 생각은 많은,, 그런 밤이다.


#글루틴 #팀라이트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병에 걸린 외국계 회사원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