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참 잘 해오셨네요"
지난주 토요일 방문한 한의원에서 뜬금없는 칭찬을 받았다.
한포진 증상으로 일주일간 매일 족욕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열심히 족욕을 한 이후 많이 나아진 내 피부를 보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숙제를 잘해오는 사람들은 빨리 개선이 된다고.
칭찬의 의미로 건넨 말이었지만, 정작 이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여기 와서까지 숙제를 꼬박꼬박 잘했다는 말을 듣다니.'
남이 시키는 숙제를 성실히 하며 살아온 나 자신이 참 싫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거절하고 대충 해도 되는데, 꾸역꾸역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왔던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안 해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물론 전날 밤까지 미루다가 닥쳐서 하긴 했지만, 숙제를 빼먹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하기 싫어서 몸부림치면서도, 위아래에서 받는 숙제들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 사장님의 부당한 지시 사항도, 팀원들이 요청한 자료도 숙제처럼 하는 것 같다.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 봐, 일단 숙제가 들어오면 성심성의껏 결과물을 내려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 나의 이런 성향을 지적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실 잘 몰랐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숙제에 대한 성실한 이행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의원에서 들었던 칭찬에 대한 안 좋은 감정 끝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숙제를 잘 해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약속을 잘 지킨다 - 시간, 업무, 행동 등 여러 분야의...
이를 너머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책임감이 크다 - 마찬가지로,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근면 성실하다
인정 욕구가 있다
정해진 범주 내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
정리해 보니 약속, 책임감, 사회적 의무와 같은 단어들로 특징이 추려진다.
숙제를 열심히 하거나 업무를 성실히 하는 것 자체는 사실 학생으로서나 사회인으로서나 필요한 태도 중 하나이다. 선생님이나 상사들이 선호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왜 한의원에서 들었던 칭찬에 거부반응부터 들었을까?
사회적 미덕이라 생각되는 태도가 싫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 발견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이 내주는 숙제를 생각 없이 성실하게만 하고 싶지 않은 거였구나. 나만의 숙제를 만들고 그것을 주도적으로 해나가고 싶었구나!
결국 스스로 발견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할 일들을 부여하고, 직접 나의 힘으로 달성해보고 싶다.
누가 시켜서 잘 해가는 일들에 대한 칭찬이 동기부여가 되었던 시절은 이제 끝난 것 같다.
나만의 내적 동기부여가 너무 절실해서, 남이 주는 칭찬이 더 이상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 어떤 것을 어떻게 해나갈지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또 나를 발견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오늘은 나 스스로 잘했다 뿌듯하다 말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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