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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r 25. 2024

화살이 향하는 끝은 결국 나 자신

씁쓸한 익명 게시판

새로 온 리더가 조직을 떠난 지 딱 일주일째다.

무정부 시대답게 여기저기 말도 많고 온갖 추측들이 난무한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미래가 불투명하며 혼란스럽다.


얼마 전 동료가 회사 익명 게시판에 우리 부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해서 글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리더의 퇴사 공지를 화제로 여러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그중엔 일부 동료들을 겨냥한 악플도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모른 채 쓰인 추측성 악플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익명 게시판에서 타 부서의 글을 볼 때는 남의 이야기라 그런지 사실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글을 읽고는 옆 동네가 시끄럽겠구나 정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 부서 동료들이 직접 쓴 것으로 추측되는 구체적인 악플을 보자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화가 나는 감정을 넘어 악플을 쓴 사람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악성 댓글을 남기는 걸까?

악플도 일종의 관심 끌기 행동일까?

이 악플로 작성자는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잠시나마 악플로 자살까지 생각하는 유명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악플의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 악플의 내용에 대한 프레임이 그 사람에게 씌워지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내용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해도 남는 건 오해 섞인 시선일 것이다.




악플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악플이라는 화살이 향하는 끝은 나 자신일 수 있다


익명 게시판을 이용해 사실 검증이 되지 않은 내용을 댓글로 달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여기에 또 다른 악성 댓글이 달리며 어떨 때는 댓글 싸움으로 번진다. 진실은 뒤로한 채 자기들끼리 서로를 헐뜯고 비방한다.


물론 익명 게시판의 순기능도 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는...

하지만 익명 게시판을 남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건설적이고 올바른 비판이 아니라, 비난과 손가락질이 목적이라면?

결국 내가 쏘아 올린 화살은 돌고 돌아 나 자신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도 언제든지 악성 댓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생각.

악플은 마약 같은 존재이다.

악플을 쓰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중독되고 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게 말이다.

아니, 설령 이 중독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의지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카카오 웹툰 중 악플방지 취업제한법이라는 웹툰이 있다.

악플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가, 악플 활동에 대한 벌점을 매기고 그 벌점에 따라 취업의 상한선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양심의 가책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예전의 댓글이, 돌고 돌아 나의 취업을 막는 가장 방해물이 된다는 설정이다. 

가해자들은 악플의 주인공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구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라기보다는 취업을 위해서이다. 

물론 가상의 설정이지만, 악플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정도는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 웹툰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표현을 하기 전, 상대방을 배려해 보자.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내 표현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글을 올려보자.


화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면 삼류 비난이 되고, 

다시 내 생각을 입혀 대안까지 제시하면 일류 비평이 될 수 있다.


부디 손가락 끝 악플 하나로 나 자신에게까지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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