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어떻게 쓰시나요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 내고 있던 중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인 줄 알고 무시하려 했는데, 알람 내용을 보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 그렇다. 오늘은 월급날인 것이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노래 제목도 있지만 돈이 들어온 것을 본 순간만큼은 참 반갑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내 한 달간의 고생을 보상받은 느낌이랄까.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달이라는 직장인의 시간은 비로소 월급으로 방점이 찍힌다. 아무리 내가 일을 많이 했더라도 월급이 없다면 무료 봉사일 뿐이니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나이를 먹어가며 월급에 대한 의미도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아빠가 월급날 들고 오시던 돈 봉투와 통닭 봉투는 가장의 책임감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내 첫 월급으로 산 최초의 고가 물품인 라디오 겸 스피커는 경제적 독립의 시작이자 기쁨이었고...
지금은 월급 대부분을 집과 은행에 헌납하고 있어 서글퍼질 때도 있지만, 만약 월급이 없었다면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없었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월급 알람을 받고 나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글쓰기를 안 했던 예전의 나날들에는, 월급은 통장에 찍힌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돈을 좇다가 일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나의 철학 때문에 더 무관심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일상의 작은 것들도 글감으로 다가오는 요즘에는 월급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없어보면 안다, 월급의 소중함을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월급도 마찬가지다.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 텅장 상태라 하더라도 월급이 나오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직장인들에게 천지 차이이다. 월급은 곧 생계이자 생존의 기본템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기본이 되는 모든 것들이 풍족할 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백수로 지내던 9개월의 시간 동안 월급 없이 살다 보니 이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왜 월급이 당연하게 느껴졌을까? 매달 25일마다 들어오던 돈이 끊기고 3개월이 넘어가니 초조하고 막막하고 답답했다. 커피값이 아까워 모임을 피하게 되고, 마트 대신 재래시장에 다녔다. 툭하면 남편과 경제적 문제로 싸움을 벌였다.
돈이 주었던 풍요가 사라지자 내 인성의 밑바닥도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월급은 나의 경제적 독립과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니 직장인들이여, 월급이 적다고 결코 무시하지 말자. 월급을 받을 수 있음에 월급날 하루라도 눈 감고 감사해 보자.(물론 쉽지 않다) 와이프에게 다 뺏겨서 돈냄새 한 번 못 맡아봤다고 불평하지 말자. 덕분에 아이에게 예쁜 옷도 도 입히고 주말 외식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 계속 투자해야 한다
월급 입금 알람이 뜨자마자 곧이어 카드값 출금, 대출금 이자 출금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진다. 결국 통장에 남는 돈은 거의 없고, 그마저도 어영부영 밥값 커피값으로 쓰다 보면 언제 들어오기는 했었나 싶다.
동료가 추천한 주식에 쥐꼬리만큼 넣었는데 그 꼬리마저 잘려 나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버이날, 결혼식 등이 겹치면 마이너스 통장을 기웃거려야 한다.
스쳐가는 월급으로 괴로워하는 직장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사항 중 하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쓸 돈을 꼭 마련해 놓으라는 것이다. 목돈이 아닌, 단돈 2-3만 원이라도 말이다.
사람마다 필요하다 생각하는 가치는 모두 다를 것이다. 그것이 힐링 여행일 수도 있고 좋은 영화 한 편 보기일 수도, 아름다워지기 위한 색조 화장품 구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것에 돈을 썼을 때 가장 뿌듯하고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가를 먼저 찾는 것이다.
대출금을 갚느냐 나를 위한 돈을 하나도 못 쓴다면 내 삶이 불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선물하는 의미로 나를 위한 재투자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코인 투자나 부동산 투자만 투자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심지어 일본의 한 작가님은 나를 위한 배움의 투자에 무려 월급의 10%를 쓴다고 했다. 그 투자가 선순환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미래에 더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는 단단한 실력을 갖게 해 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공감하며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아직 10%나 쓸 용기는 없어 고이 간직하고 있는 위시리스트 중 하나이다.
4인 가족을 부양하며 생활의 여유가 없는 외벌이 가장들에게는 이 말이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뿐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습관처럼 피우는 담배 한 갑 대신,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한편을 위해 내 월급의 일부를 쓴다면 팍팍한 삶이 그 순간만큼은 여유롭고 의미 있다 느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남편 몰래 통장에 고이 모아 놓은 비상금이 갑자기 생각났다. 1년 넘게 모으다 보니 생각보다 묵직해졌던데 이걸로 뭘 하면 나에게 선물한 기분이 들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아무튼, 오늘은 월급날이다. 오예!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