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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y 27. 2024

나만의 아지트, 에너지가 샘솟는 공간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토요일 아침 8시, 졸려서 자꾸만 감기는 눈을 간신히 뜨고 일어나 씻는다.  곤히 자고 있는 중1 딸을 깨워 부리나케 준비하고 학원에 내려주면 9시. 중학생이 되니 학원을 주말에도 가야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수업을 빼먹거나 시험을 통과 못할 때만 가긴 하지만, 주말에 못 쉬니 본인도 나도 피곤해진다.


아이를 내려주고 근처 한의원에 가서 염증 치료를 받고 학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한 주 동안 쓸 식재료와 생필품을 사러 마트로 향하는데,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다. 자꾸 하품만 나오고 머리가 멍한 느낌이다. 평소에 못 잔 잠을 주말 동안 몰아 자며 피로를 푸는데, 이번 주는 글렀다.


하품을 하며 걸어가다 발견한 곳은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바(Espresso Bar).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이곳은, 우리 동네에서 보기 힘든 에스프레소 전문점이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바리스타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동네에서는 유명하다고 한다.

자석에 이끌리듯 에스프레소 바로 향하며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오늘은 뭘 마셔볼까. 잠도 깨고 싶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싶다는 기대를 가득 안고 문을 연다.


이곳에 들어가면 갑자기 시공간이 바뀐 느낌이 든다. 

동네 중심가라 큰 건물에 술집과 식당, 마트와 병원 등이 있어 항상 시끄럽고 분주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 안에 들어오면 유리문 하나를 두고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기가 곧 이탈리아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국적인 액자나 소품뿐 아니라, 매장 안을 섬세하게 채우고 있는 커피에 어울리는 재즈 연주곡. 알맞은 온도로 설정된 실내에 들어서면 커피와 빵의 달콤하고 근사한 향기가 반긴다. 바리스타분은 바버샵에서 갓 나온 것 같은 헤어 스타일과 나비넥타이 정장으로 맞아 주시니 대접받는 기분이다.

커피 메뉴는 평소 접해보지 못한, 왠지 이탈리아에만 있을 것 같은 꼬부랑글씨이지만 그것 또한 신선하다. 


지난번 혼자 왔을 때부터 느꼈는데, 이상하게 여기에만 오면 그렇게 찾아 헤맸던 글에 대한 영감이 마구 떠오른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커피 메뉴판을 본 순간부터 호기심이 발동하고, 스탠딩 테이블로만 이루어진 공간을 둘러보면서 새로움을 느껴서 그런가 보다. 평소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던 내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오는 순간 무언가가 떠오르고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처음 마셔보는 에스프레소 메뉴는 때로는 너무 쓰고 때로는 입맛에 안 맞을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좋은 경험이라 느낀다. 줄을 서서 빨리 메뉴를 정하고 급하게 나와야 되는 회사 앞 평일 스타벅스에서는 절대 해보지 못할 체험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최적화된 내 사고방식과 행동이, 여기에만 오면 유럽인들의 느긋한 여유의 문화로 바뀌며 진정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사실 지난번 왔었을 때는 바리스타님과 인터뷰를 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주변 눈치만 보다 끝났다. 이번에는 둘만 있는 틈을 타 바리스타님의 커피 추천과 커피 취향을 물어보는 데 성공했다. 다음에 오면 꼭 추천 메뉴인 에스프레소에 도전해보리라. 커피 맛을 아직 모르지만 왠지 전문가의 가이드 덕분에 미식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마트에 갔다가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마음이 급해진다.

떠오르는 글감도 정리해야 되고 바리스타분께 질문도 더 하고 싶은데 아쉽기만 하다. 브런치 앱을 열어 생각의 제목만 겨우 적고, 마시던 카푸치노의 거품까지 들이켜본다. 커피를 다 마시지 않아도 잠은 이미 깼고, 머릿속은 맑아졌다. 내 안에 에너지가 다시 생긴 느낌이다. 짧은 15분의 시간 동안 각성효과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어 간다.

아이가 매주 토요일마다 학원 보충수업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직 이 에스프레소 바에 오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에만 오면 에너지도 글감도 채워지는 걸 어쩌지. 나만의 아지트이자 영감의 장소가 돼버렸다.


짧게 머물러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며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장소가 필요하다고. 그 공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거기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치유가 되고 즐거움을 느끼고 자극이 되는 그런 장소 말이다. 

거창하거나 특별한 곳이 아니어도 좋다. 힘들게 대학원을 다닐 때의 나에게는 장소는 학교 뒷산이었고, 회사를 다니는 지금은 회사 작은 공원이다. 때론 치열하고 때론 우울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공간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이러한 공간 이동이 힘든 상황이라면 스마트폰 영상이나 음악으로나마 그 느낌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일상의 충전,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리라. 부디 주위에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하기를 기원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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