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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Dec 08. 2023

파티? 아니, 잔치!

생일파티 단골메뉴 잔치국수

오늘은 딸내미에 대한 푸념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6학년 딸의 생일파티 메뉴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잔치국수'이다.

아니 알파세대의 파티 음식이 잔치국수라니! 그것도 다른 날도 아닌 자기의 생일파티에 말이다.




미드(미국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나에게, 파티는 곧 화려한 만찬이다.

서양의 파티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너무 예쁘지만 간에는 기별도 안 갈 것 같은 핑거푸드나 잘 구워져 육즙이 좔좔 흐르는 스테이크, 그리고 반짝이는 기포가 아름다운 샴페인과 같은 조합들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멋진 샹들리에 조명 밑에 서서 솰라솰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이 흔히 상상하는 파티의 모습 아니던가.


게다가 이 파티 음식들은 평소에는 집에서 엄마가 잘 만들어주지 않아, 이런 파티에 와야만 먹을 수 있는 그런 고급메뉴라는 공통점도 있다. 

누가 집에서 에스까르고를 전채요리로 먹고, 터키를 정성스레 오븐에 구우며, 홈메이드 티라미수를 디저트로 짜잔 하고 꺼내놓고 만찬을 즐기겠는가.


나는 미드를 통해 알게 된 파티 음식에 대한 환상이 있어, 딸의 생일파티 음식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서양식으로 예쁘고 화려하게 차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생일 때마다 먹고 싶은 엄마의 요리를 물어보면, 잔치국수라고 대답하는 딸 때문에 나의 바람은 실현된 적이 없다.


아니, 생일파티에 촌스럽게 잔치국수가 뭐냐고...

90년대 결혼식장에서 많이 나오던 메뉴인줄만 알았던 잔치국수는, 매년 딸아이의 생일마다 식탁에 오르고 있다.


게다가 이제 사춘기 청소년으로 접어들어 생일파티도 거부한다.

좀 더 어릴 때는 생일 때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깔깔대며 재미나게 놀기라도 했는데, 우리 집에서 더 이상 이런 귀여운 파티는 찾아볼 수 없다.


화려한 생일파티를 권하는 나와,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퉁치는 딸.

가끔 누가 엄마인지, 누가 딸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이런 딸의 잔치국수를 향한 사랑은 아기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남편과 나의 직장은 서로 4시간이 넘는 거리로 아주 멀어 주말부부 생활 중이었고, 결혼하자마자 덜컥 생긴 아이를 키울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 강원도에 사시는 친정부모님께서 딸을 맡아 6년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셨다.

그리고 딸의 입맛은 이때부터 '할매니얼' 입맛으로 길들여졌다. 그 흔한 햄버거와 피자도 맛이 없다며 거부하고, 콜라는 입에도 안 댄다.

할머니가 끓여준 미역국과 잔치국수가 최고의 음식이라고 손꼽았다. 


딸아이가 7살이 되던 해, 남편과 살림을 합치고 딸을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그때에도 딸은 잔치국수를 끓여주면 아주 좋아했다.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던 시절의 음식 추억이 남아 있어 그랬나 보다.

그리고 내가 우리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와 여름마다 담가주던 열무김치가 문득 생각나듯, 나의 딸에게도 잔치국수는 그녀의 소울푸드인가 보다.


사실 딸내미는 잔치국수를 정말 대충 끓여줘도 잘 먹는다.

어떨 때는 바빠서 고명을 못 올려줬던 적도 있었고, 어떨 때는 국수가 불었던 적도 있지만 항상 엄마의 잔치국수가 최고라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온전히 그녀를 돌보지 못한 시간만큼 미안한 마음에, 지금이라도 정성이 들어간 많은 파티 음식들로 그 시간과 추억을 보상하려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도 엄마인 나만의 욕심이지, 딸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그래, 파티면 어떻고 잔치면 어떠랴.

그 파티의 주인공인 딸내미가 맛있다고 느끼고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이 글을 읽을 확률이 전혀 없겠지만(거듭말해 그녀는 사춘기이다), 나의 딸아!

아무리 네가 잔치국수를 좋아해도, 이번 우리 집 크리스마스 홈파티는 무조건 서양식 만찬으로 차릴 거야.

왜냐하면 엄마도 로망이라는 게 있거든!!!


그동안 해 먹었던 우리 가족만의 홈파티 메뉴 사진을 올리며 오늘 글을 마친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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