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Jun 25. 2024

사원증은 회사 출입증 그 이상일까

사원증이 만약 없다면?

코로나를 겪으며 바뀐 우리 회사의 풍경 중 하나는 사원증 착용이다.

기존에는 지문을 입력하여 출입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교차 감염의 위험 때문에 어느 순간 사원증으로 대체되었다. 손가락만 갖다 대면 출입이 가능했던 편한 시절은 가고, 이제는 사원증이 없으면 사무실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간혹 깜빡하고 사원증을 집에 놔두고 온 날이면 누군가가 출입할 때까지 하염없이 밖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출근할 때뿐만이 아니라 화장실에 가거나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처럼 귀찮아서 목에 걸고 다니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보통 옷 주머니에 넣어 놓는데, 이마저도 여름이 되니 불편해진다. 주머니가 없는 옷이 늘어나니 사원증을 사무실 책상에 놔두고, 다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유난히 답답한 일이 많은 날에는 잠깐 나와 회사 근처 공원으로 피신을 한다. 

'머리가 아플 땐 역시 초록색을 봐줘야지!'라며 자연에 대한 무한한 감탄을 하며 걷는데 무언가 걸리적거린다. 바로 사원증이었다. 항상 내 몸처럼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거슬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것 같은데, 부피도 더 작은 사원증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직장을 다니며 사원증을 안 차고 다녔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왜 지금 와서 요 작은 물건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을까. 

나는 지금 걷고 있고 딱히 몰두할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에, 동안 번도 해보지 않은 사원증에 대한 고찰을 시작해 보았다. 말이 좋아 고찰이지, 쉽게 해결도 되지 않을 회사일보다는 사원증에 대해 생각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게 다가왔을 뿐이다.


나 같은 직장인들에게 사원증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가장 기본인 회사 출입증으로서의 기능이 떠오른다. 이게 없으면 회사로 출근할 수가 없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원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원으로서 매일 지참해야 할 필수품이다. (최첨단 홍채 기술이나 자동 인식 시스템을 가진 회사는 예외로 하자)


여기에 추가 의미를 덧붙이자면 바로 일종의 사회 구성원, 회사원으로서의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취준생에게는 취업 합격 목걸이가 바로 사원증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염원했던 회사의 사원증을 처음으로 획득했을 때 가지는 기쁨은 남다르다. SNS에 인증숏으로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사원증은 때로는 계약직과 정규직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계약직의 출입 권한을 다르게 주거나 정규직과 다른 디자인의 사원증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 작은 목걸이 하나가 뭐라고, 수많은 계약직들을 서럽게 만들고 권력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보안 구역이나 각기 다른 장소의 사무실마다 사원증에 추가되는 출입 권한이 달라, 몇몇 빌런들은 이것조차도 자신만의 권력이라 생각한다.


원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 목걸이라고 한다.

그러나 회사 목걸이, 즉 사원증은 이런 기능보다는 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표식의 기능이 더 크다. 회사 반경 1km 이내에서 같은 디자인의 사원증을 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아, 얼굴은 모르지만 사람도 같은 회사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반가운 마음이 든다. 

다만 이 소속감이란 동전의 양면 같아 회사에 반발심이 들 때는 사원증부터 내팽개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치워야지라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눈앞에 들어오는 사원증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것이다. 

TMI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이런 마음으로 회사 근처 술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회사 험담을 할 때는, 반드시 사원증을 빼놓아야 한다. 사원증을 습관적으로 차고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다가 뒤탈이 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멀리서 사원증만 보고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같은 회사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사원증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사원증이 없어지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 커리어 상담을 받을 때 하루에 하나씩 총 10가지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 10가지 중 마지막을 장식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회사 명함을 떼고, 나를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나요?"


사원증이 없다면, 그래서 소속된 회사가 없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나. 명함이나 사원증이나 회사를 상징하는 연장선상의 물건이다. 내가 한 질문에 내 머리가 갑자기 멍해진다.

그 질문을 받았던 7년 전과 지금의 답은 분명 달라지긴 했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나만의 답은 명확히 내리지 못한 채 현재 진행형의 질문으로 남겨둔다. 

예전 같으면 스스로를 한심한 회사원이라 생각하고 괴롭혔겠지만, 지금은 나를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아껴 주기로 결심했다. 회사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나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회의 시간에는 금물! 멀티 태스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