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갈등을 겪고 이혼까지 생각하는 부부들이 출현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오은영 선생님께 상담을 받는 형식이다. 프로그램 제목이 결혼지옥이라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이들의 일상생활은 일반적인 부부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소한 일들로 말다툼이 일어나고, 설거지를 네가 해야 된다고 싸우고, 작은 오해가 쌓여 폭발하는 모습들은 나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번에 출연한 부부는 서로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경우였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아내가 걱정되는 마음과는 반대로, 아내에게 화가 치밀어 욕을 하는 남편. "너 뭐 하다가 이제 들어왔냐, 지금 제정신이야? XX"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에게 부아가 치밀어 홧김에 아무 말이나 하는 아내. "나 딴 남자랑 놀다 들어온 거다. 어쩔래?"
둘의 대화는 선인장의 뾰족한 가시같이 날아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결국 더 큰 싸움으로 번졌다.
이를 듣고 관찰하던 오은영 선생님은 둘에게 물어본다.
"남편분, 혹시 아내분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자 남편은 우물쭈물하며 늦게 들어오는 아내가 걱정돼서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고 했다. 그의 정제되지 않은 답변을 듣고는 오은영 선생님은 이를 다시 해석해 준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건강도 상하고, 귀가 시 안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걱정된다. 그리고 당신의 힘든 일이나 기쁜 일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 나와 술 한잔 놓고 대화를 하며 당신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거 맞으신가요?"
그제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응답한다. 가시 돋친 말 대신, 처음부터 서로를 향한 진심의 말로 소통했으면 이런 오해가 없었을 텐데, 그동안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 말미에 나온 오은영 선생님의 부부 대화 해석을 들으며, 직장 내 대화에도 통역이 필요하다 생각되었다. 서로 다른 의견과 관점을 가진 성인들이 속해 있는 곳이 회사이다. 사랑해서 만난 부부도 갈등이 생기는데, 직장인들은 오죽할까. 2-30년 넘게 살면서 만든 자아를 내려놓고, 회사원의 신분으로 변신한 사람들이다. 원하던 그렇지 않던 말다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서로의 생각이 달라 그렇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직장 내 갈등은 '표현법'에서 비롯된다. 한 마디 잘못된 말이 오해와 싸움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이 조금 어이가 없는데요?"
"여기까지는 저희 부서에서 다 했으니, 나머지는 그쪽 부서에서 맡아주시죠."
"사장님이 여기까지 하라고 했고, 나는 다 전달한 거다~"
만약 이 대화를 직장 내 통역사가 다시 말해준다면 어떨까?
"말씀하시는 내용의 포인트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도인지 다시 설명해 주시겠어요? 제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말씀하시는 내용에 대해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요."
"현재 저희 부서에서는 해당 과제에 대한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A, B, C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업무들과 병행하려다 보니 지금 일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D, E의 업무를 그쪽 부서에서 맡아서 수행해 주시면 공동의 과제가 잘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사장님께서 이런 과제를 주셨는데, 배경은 OOO이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원하셔서 쉽지 않을 건 알고 있어. 그러나 우리 팀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같이 해보고 싶은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줄 수 있어?
통역사가 하는 역할은 상대방의 언어를 우리의 언어로 잘 해석해 주는 일이다.
그래서 서투른 표현으로 하는 상대방의 말도, 때로는 의역을 통해 매끄럽게 바꿔주기도 한다. 어렸을 때 받은 교육 과정에, 표현법이나 대화법은 없으니 어려운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 어른들의 대화는 진심이 결여되어 있는 채로 거친 표현만 남아 있다. 내가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고 싶어서, 상대방이 꼴도 보기 싫어서, 그리고 잘 몰라서 본심과는 다르게 말을 내뱉는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가 이해가 안 간다.
소통의 기본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상대방의 마음과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경청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대화를 할 때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핵심은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설령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소통의 기본이 되어 있으면 대화가 훨씬 매끄럽고 생산적이다. 가까이하고 싶은 누군가가 된다.
가끔 직장 내 소통도 외국인과의 대화처럼 힘들 때가 있다.
이걸 제대로 번역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참 좋겠다 희망한다. 그러나 어렴풋이 답은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이란 것을. 그리고 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듯, 소통방법도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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