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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ul 16. 2024

워킹맘은 슈퍼맘이 아니다

혼자서 다 잘할 수는 없잖아

지난주에는 평소 잘 보지 못하던 직장 동료들과, 전시회를 계기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 부스에 참가하려면 우리 부서만 최소 8~1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부스에 제품을 전시하고, 그 제품을 보러 온 사람들과 상담하고, 부스에서 열리는 행사를 진행하는 일을 한다. 우리 부스에 사람들이 몰릴 때는 그들을 응대하느냐 정신없지만, 그 사람들이 대부분 콘퍼런스에 참석하면 부스는 조금 한가해진다. 그럴 때는 삼삼오오 부스 앞에 모여 그동안 못다 한 안부를 나눈다. 대부분 회사 얘기, 일 얘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것도 곧 질려 개인적인 이야기로 흐름이 바뀐다. 얼마 전에 산 자동차 시승감은 어떤지, 지난 주말 놀러 갔다 온 강릉은 좋았는지, 역류성 식도염은 나았는지 등을 서로 묻고 답하고 호응한다. 이러한 스몰토크도 인원 구성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긴 한다. 하루는 우연찮게 아이를 키우는 동료들과 같은 그룹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날 대부분의 대화는 '아이'로 시작해서 '워킹맘'으로 끝났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대조로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구성원은 총 5명. 아이를 키우는 엄마 2명과 아빠 1명이 포함된 집단이라, 부스에서 했던 아이 이야기가 다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아니, 생각해 보니 이 주제가 다시 나온 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여자 동료의 질문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이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데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워킹맘으로 아이 키우는 거 괜찮아요?" 

그녀는 30대 중반으로 커리어를 한참 쌓아 나가는 중인데, 과연 이걸 육아와 같이 병행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궁금해했다. 이제 막 40살이 된 남편은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그런 남편과는 달리 자신은 아직 확신이 안 든다고 설명한다. 일을 더 할 나이에 과연 아이를 낳는 것이 맞는지, 안 낳자니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본인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이 질문을 듣던 또 다른 30대 중반의 워킹맘이 대답했다.

"아뇨, 전혀 안 괜찮아요. 저 보세요! 독박육아 하느냐 꼭 가야 하는 지방 출장도 못 가고 주말에도 잘 못 쉬잖아요."

그녀의 남편은 요즘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하고 있어 6살 아이를 거의 혼자 보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한다. 고객 앞에서 직접 발표하는 중요한 세미나 도중에 아이가 아프다고, 지금 빨리 데리러 오셔야 될 것 같다고 하는 메시지를 받으면 기분이 어떠할까. 하던 발표를 마치고 뒤늦게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는, 선생님께 빨리 가겠다고 전화를 한다. 아이를 데리러 달려가고는 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이 메시지를 보고 부리나케 마친 고객과의 세미나와 상담이 불충분한 것 같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아니 메시지를 그때 받지 않았더라면 마무리를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오늘 아침 유치원에 보낼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아프지? 내가 뭘 잘못 먹였나?'

'내가 뭘 얼마나 잘해보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회사에 다니는 걸까?'

'내가 지금 버는 돈이나, 돌봄 이모님한테 드리는 돈이나 똑같은데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게 맞는 건가?'

'아냐, 집에서 아이만 보는 것보다는 회사에 나가는 게 훨씬 낫지, 정신 건강에...'

유치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차 안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매번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는 자조 섞인 고민들이다.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워킹대디(?)도 거든다.

자신의 아이는 8살이고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 키우는데 조금 수월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워킹대디에게도 힘든데, 워킹맘들은 엄라나 힘들겠다며 말이다. 육아는 정말 끝도 없다고 덧붙인다. 응애응애하고 우는 신생아 때는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게 소원이었는데, 어느새 커서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되나 고민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부모의 물리적, 정신적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단다. 지금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돌봄 이모님을 구했지만 그분이 언제 그만두실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일하면서 겪게 되는 육아에 대해 엄마 아빠 동료들이 덤덤하게 털어놓은 축약본 이야기였지만, 이 대화를 듣던 신혼 동료는 크게 낙담한 표정이다.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걱정이 사실로 밝혀져 정말 아이를 갖는 것이 맞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장밋빛 현실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가혹한 환경인지 몰랐다고. 


점점 낮아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워킹맘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빠의 육아휴직은 아직 우리 회사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였고, 엄마들은 육아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경단녀가 되기도 했다. 

실은 나도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를 지워야겠다'였다. 한창 일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는 육아휴직을 쓰면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가 없는 상태라는 결론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낙태법을 검색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싹하고 정신 나간 짓이었지만, 당시에는, 당사자인 나에게는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대학원을 나온 건 아니었는데, 회사에서 이렇게 열심히 아등바등 일하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남편은 남쪽 끝에 있었고, 공동 육아는커녕 한 달에 얼굴 한 두 번 보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앞날이 깜깜했다. 동료직원인 육아 선배들은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감정 이입이 되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도 수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워킹맘들에게, 선배 워킹맘으로 나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 생각해 본다.

워킹맘은 슈퍼맘이 아니다.

워킹맘들이 좌절하는 순간은, 내가 잘 못하고 있어서 모든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때이다. 아이가 아픈 것도, 성적이 안 좋은 것도 내 탓인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제대로 못 해내고 있는 것도 아이를 키우느냐 시간을 더 못 쏟아서인 것 같다. SNS를 보면 일과 육아를 둘 다 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자기 계발까지 하는 엄마들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한참 못나 보인다. 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은데,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나는 힘들다. 때로는 너무 버거워 엉엉 울고 싶은데, 야근하고 온 남편에게 이런 감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워킹맘들이여,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만약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이고 제도이지, 당신이 아니다. 당신들은 육아를, 일을 조금이라도 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슈퍼맘은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환상이다. 둘 다 잘하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잘해야 된다는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자신을 위한 여유를 주었으면 한다. 덜 잘하면 큰 일 나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 남들과 비교를 안 하면 부담이 조금 덜해질 테니 이 방법도 써보자.

이렇게 잘 해내고 있는 자신에게 감사와 칭찬을 스스로 해보라 말하고 싶다. 힘들면 실컷 울고, 나를 위해 하루 딱 3분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자. 


다 괜찮아질 거라 얘기해주고 싶어도, 이건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것을 알기에 거짓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 아이가 크면 지금보다는 수월해질 것이고, 부모로서의 경험이 쌓여 조금 덜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육아에도, 일에도 희망은 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육아와 일을, 당신은 지금도 잘 해내고 있다.

선배맘으로서 워킹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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