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노력이 필요해요
T 성향의 팀장인 나에게, F 성향의 팀원들과의 대화는 때때로 어렵게 느껴진다.
만약 팀원이 이렇게 하소연한다면 팀장인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팀장님, 저 오늘 진짜 억울한 일 있었는데요, A가 어쩌구저쩌구~~~(중략) . 아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는 회사 못 다니겠어요!"
이 이야기를 듣던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속마음은, '이러다가 이 친구 그만두면 어쩌지?'였다. 마지막 문장에 포함되어 있던 '회사 못 다니겠어요'라는 단어가 가장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팀원은 어쩌면 억울한 스토리의 서사에 더 방점을 두고 얘기했을지 모르겠지만, 청자인 나에게는 뒷문장이 메아리처럼 계속 들려온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팀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될까 고민하고 있다.
"아니,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얘기해 보자. A가 잘못한 것 때문에 네가 그만둘 필요는 없는 거야."
땡땡땡땡땡! 팀장으로서 나의 대답은 정말 빵점짜리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던 말부터 나간다. 아뿔싸, 말해놓고도 이건 아니다 싶어 눈치를 살살 보며 팀원의 표정을 살핀다.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고,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헐, 이건 뭐지?'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 같다.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보면서,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학습했었는데... 역시 머리로 배운 것과, 그걸 실천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간극이 크다. 좋은 팀장의 자질에 대해 옆 팀장들한테 나불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다.
팀원이 상담을 요청하면, 해결책부터 제시하고 싶어 진다.
그것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빠른' 해결책 말이다. 팀원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은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 겪어봤던 것들이고, 나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 '이럴 땐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고민을 가져온 경우, 내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두뇌회로가 가동된다. '이 문제는 B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얼른 물어보고 해결해 줘야겠다.'
팀원이 이렇게 게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을 통해 찾은 가장 효율적인 설루션을 주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답이 여기 코앞에 있으니 빨리 적용하고 실행하면 네가 이 고민을 헤쳐나가는 데 훨씬 수월할 거야'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 해결책으로 발동되는 순간이다.
팀원들은 열이면 열, 팀장의 이런 반응에 경기를 일으킨다.
비단 F 성향의 팀원들 뿐만이 아니다. F가 감정적이고 T가 이성적이기 때문에 다른 게 아니었다. 모든 팀원들이 원하는 것은 즉각적인 해결책이 아닌,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서 팀장인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얘기해 보자'가 아닌, '정말 억울했겠다.'이다. 마음속으로는 설령 저 상황에서 자기가 잘 대처했으면 억울할 일도 없었을 텐데 이해게 잘 안되네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입 꾹 다물고 참아야 한다. 어찌 보면 회사에서 팀원들과 잘 지내는 비결은, 집에서 아이들과 잘 지내는 비법과도 맞닿아 있다. 아이가 나에게 찾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친구들과의 말다툼을 말했을 때, '어휴, 그때는 네가 이렇게 반응했어야지.'라고 엄마가 말한다면, 그다음부터 나와 말을 섞지 않을 것이다. 엄마랑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선을 긋게 된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많이 속상했겠네'라며 아이가 느꼈을 감정부터 읽고 수용해줘야 한다.
이성적인 사람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감정의 영역을 간과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감정은 있고, 감정이 온전히 타인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신뢰가 생긴다. 나를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 깊숙한 곳에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굳이 설루션을 바로 주지 않더라도, 감정 수용 이후에는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팀원들도 문제의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팀장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대부분의 경우 '답답함, 화남, 혼란스러움'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반대로 좋은 소식을 공유하는 경우에도 '기쁨' 그 자체를 같이 느끼고 공감해 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상사는 나보다 더 극 T 성향인 분이다.
우리 부서로 오신 지 얼마 안돼서 서로에 대한 적응을 하는 중인데, 나도 모르게 그분에게 나의 현재 감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마케팅 부서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고, 그걸 다른 부서에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 화가 난다고. 그분은 내 얘기를 곰곰이 듣다가 질문하셨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뭐예요(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듣는데 머릿속에서 띵 하고 징이 울린 것 같았다. 우리 팀원들이 그동안 나와 대화하면서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역지사지가 저절로 되었다. 무언가 해결책을 바라고 상사에게 털어놓은 건 아니었고, 그냥 억울해서 좀 토닥거려 달라고 얘기한 거였는데...
그래서 T 팀장과 F 팀원인 우리 팀은 어떻게 일하냐고?
이제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적응한 것 같다(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우겨본다). 팀원들은 팀장의 T 성향을 맞춰주려고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내 표정만 보고도 무슨 말이 나올지 예측되어 '아, 그냥 제가 조금 화가 나서 감정을 말씀드린 거고요, 어떻게 해결할지도 알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헤헤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반대로 F 팀원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바뀌어가고 있다. 일단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끝까지 듣는 연습 중이다. 함부로 개입하지 않기 위해, 도를 닦는 자세로 참고 참는다. 해결책은 그들 속에 이미 있을 거라 믿어본다. 타고난 천성으로 자꾸 의심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꾹꾹 눌러 담는다. 결국 그건 나 자신의 문제이지 팀원들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팀장, 멋진 팀장이 되는 길은 아직 멀고 멀었다.
인격수양, 감정수용, 아직도 왜 이리 배우고 실천해야 될 게 많은지. 그래도 팀원들은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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