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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ug 05. 2024

회의가 정말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

때로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

이번 팀장 회의 주제는 마치 시사 프로그램 제목 같았다.

'팀장 회의, 과연 필요한가?'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모여 팀장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 주 동안 있었던 각 팀의 주요 안건이나 리더십 회의내용 등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의이다. 그러나 회의가 거듭될수록 원래의 취지는 희미해져 갔다. 미리 회의 주제를 모아 사전 공유하고 인지한 상태로 회의에 참석하자는 의도와는 다르게 회의 1시간 전까지도 주제가 모아지지 않았다. 공유할 주제가 있는 팀장이 발표하는 중간에도, 관심 있는 팀장들은 화면을 쳐다보았지만 자신과 관련 없는 주제인 경우 노트북으로 이메일 회신을 하는 식이었다. 회의를 하면 할수록 회의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었다. 일부는 농담을 하면서까지 분위기라도 띄워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회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었고, 각자 공유하는 정보의 수준은 달랐으며, 참여도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새로 온 리더는 팀장 회의에 몇 번 참가한 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많은 참석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이 회의에 대해 공개 토론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안건 다 제쳐두고, 오늘은 이 회의가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해 보자고 말을 꺼냈다. 

"제가 질문을 드리지 않으면, 아무도 발언하지 않을 것 같네요. 먼저 A팀장님, 팀장 회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혹은 아니라면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가장 먼저 질문을 받은 A팀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20년 차 경력직답게 노련하게 대답했다. 팀장 회의 말고도 참석해야 할 회의가 많고, 참석하는 사람들이 다 딴짓을 해서 집중도가 낮다고. 여기에 관련해서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한참 설명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리더분이 말을 끊고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팀장 회의가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A팀장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다가, '네,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아, 제가 중간에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려고 합니다. 필요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의 대답 먼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시작된 토론은 참석자들이 모두 발언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의견은 대체로 '정보 공유의 유일한 자리'라는 것이었다. 여러 종류의 회의가 많긴 하지만, 여기처럼 각 팀의 대표자들이 팀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 공유해 주는 자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의에서 어떤 안건을 말해도 같이 '실행'을 할 사람이 여기에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예를 들어 영업 팀장님이 선적 지연으로 고객사에 납품을 하지 못해 이슈가 발생했다고 공유한들, 다음 실행 계획을 논의할 대상은 여기 있는 팀장들이 아닌 선적을 관리하는 타 부서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얘기도 맞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차례 회의에 대한 찬반토론이 끝나고 나서는, 회의 주제를 정하는 것과 회의를 이끌어가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회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반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일단 당분간은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회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다양한 의견들을 교환했다. 회의의 목적을 '매출 달성이나 신규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방안 논의'로 할 것인지 혹은 '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항에 대한 공유'로 할 것인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목적을 논의한 후에는 주제를 논의했고, 그리고 방법까지 Why, What, How 순서로 쭈욱 의논을 계속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난 후 리더분은 자신이 쓴 간단한 회의록을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참석자들의 동의를 구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이해하고 작성한 회의록 내용이 맞는지 물어봤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정정해 달라 요청했다. 여기에는 토론한 내용뿐 아니라 향후 실행해야 할 '액션 아이템'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17년 차 회사원인 나에게도, 이번 회의는 재미난 경험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회의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나는 이 회의를 통해 말을 많이 하고 참석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내야 하는 입장이라 없어서는 안 될 자리였다. 그래서 이 회의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더 잘 참석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은 했지만 늘 생각뿐이었는데, 리더는 한 번의 회의로 정리를 끝내 버렸다. 장황하게 말만 하면서 결론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했고, 그들이 낸 의견 자체에 책임감을 부여했다. 그리고 전체가 있는 자리에서 서로가 동의한 내용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니 앞으로는 여기에 대해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지시도 한 것 같다.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마무리는 칼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토론다운 토론을 한 것 같다.

100%의 동의가 나오지 않는다면 토론을 해도 뒷말이 다시 나올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는데, 이번 회의로 새로운 토론 방식을 배웠다. 사실 팀장들은 책임감이 크기 때문에 결정을 하는 것 자체가 때로는 무섭다. 내 결정으로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이 잘못될까 봐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하나씩 서로의 의견에 대해 묻고, 찬반 토론도 하고, 전체적인 부서의 방향성을 논의하니 속이 시원해진다. 


앞으로 팀을 운영하면서 적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여기에 대해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그 목적과 방향성을 조금씩 다듬어가면 더 나은 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새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토론의 첫출발이 될 것 같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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