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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Dec 18. 2023

과연 너를 위한 잔소리일까?

조언 vs 잔소리

지난 주말, 새로 이사한 집에 어머님이 방문하셨다.

지방에 살고 계시는 데다가 아들 며느리 집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에, 우리 집에 발걸음 하신 건 8년 만이다. 

남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쿨한 어머님 성격과 항상 며느리를 향한 배려 덕분에 이번 방문이 반갑기만 했다. 다행히도 나에게 고부갈등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오랜만의 손님맞이로 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 이것저것 메뉴를 구상하고 음식을 만들었고, 꾀죄죄한 얼굴을 보여드릴 수 없어 요리를 하다 말고 뛰어가 머리를 감고 왔다.


이때부터 남편의 잔소리 전초전이 시작되었다.

너무 많아 다 쓸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예를 꼽아보자면 아래의 2가지로 요약된다.


요리할 때 바닥에 흘리지 말아라. 만약 흘렸으면 바로바로 닦아라.

욕실에서 세수하거나 머리를 감은 후 물기를 잘 닦고 흔적을 남기지 말아라.


남편은 내가 미처 그 행동을 끝내기도 전에 나에게 다가와 잔소리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내가 남긴 흔적들을 치우기 바빴다. 


잔소리를 위의 문장으로 요약해서 그렇지, 실제는 저렇게 교과서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아니, 이걸 흘리면 바로바로 닦냐고,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어휴...(이하생략)"


시간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느냐 정신없는데, 요로코롬 실시간 리얼 사운드 잔소리까지 들으니 힘들었다.

처음에 한두 번이야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 앞으로 잘하겠다 했지만 계속 들으니 나도 욱해서 그럴 거면 네가 다해!라고 되받아쳐버렸다.


움찔한 남편은 그제야 잠잠해진다. 나는 나아가 한번만 잔소리할 거면 오늘 가출할 거니 조용히 하고 상이나 차리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이윽고 어머님이 오셨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 같이 즐겁게 웃고 맛있게 식사를 하며 집들이를 마무리했다.





나는 이날 저녁 남편의 잔소리를 곱씹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잔소리를 저렇게 많이 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내가 하는 잔소리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 흐름이 이어졌다.


우선 평일동안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돌아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다.


'아! 내가 이번주에 팀원들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가!!!'


업무지시를 해놓고 그것을 제 시간 안에,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불러서 이야기했다.

지난번에 내가 얘기한 것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냐고, 혹시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라고 겉으로는 질문하듯 말했지만 결국은 잔소리였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팀원들이 이 업무를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걸 알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아니, 아는데 왜 못하지? 뭐가 부족해서 그렇지? 


그리고 깨달았다. 그건 결국 팀장인 나의 잘못된 시선과 과욕이었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남편의 잔소리로 돌아가보자.

그가 왜 잔소리를 했는지 생각해 보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그에게는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올바른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날 아침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깔끔함이 아닌, 효율성이었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해야 되니 소스와 가루를 흘리든 말든 일단 치우는 것보다는 요리를 빠르게 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단호박수프를 불에 올려놓고 10분 안에 머리를 감고 주방으로 복귀해야 하니, 머리카락이나 물기의 흔적을 없애는 것은 나의 우선순위 업무가 아니었다.


남편은 나에게 당연하고 맞는 말을 했지만, 추구하는 바가 달랐던 나는 그 말들이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팀원들에게 했던 '당연하고 맞는 말'은 결국 똑같이 잔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각자 생각하는 것과 우선순위 업무는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참지 못하고 잔소리로 표출해 버렸다.

그리고 남편한테 가출할 거니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말라고 항의한 나와는 다르게, 팀원들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제처 두고라도 나의 잔소리를 억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그들에게 미안해지고, 진심으로 반성하게 된다.


남편이 잔소리를 하며 매일 하는 얘기 '너를 위한 잔소리야'는, 사실 거짓말이었다.

잔소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결국 그 상황과 과정을 견디지 못한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빨리 해결해야만 자기 자신이 편해지므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늘어놓는 잔소리를 어떻게 하면 줄일지 생각하다가,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에게 얘기하기 전에 나의 감정과 이야기의 목적을 알아차린다

상대방의 상황과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본다

상대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나를 위한 것인지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따져본다

상대방이 이 얘기를 듣고 어떤 기분일지 한 번이라도 고려해 본다

상대방을 위한다면 잔소리 대신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한 번이라도 고려해 본다


나는 좋다고 하지만, 듣는 상대방이 힘들다면 그것은 모두 충고와 잔소리가 될 수 있다.

회사에 출근한 오늘, 잔소리를 줄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질문을 더 많이 하고 그들을 이해해 보겠다고 결심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PS. 얼마 전 남편에게 고맙다는 고백을 했다고 브런치에 썼는데, 지금 글에는 남편이 잔소리 대마왕인 것처럼 묘사해서 살짝 미안하다. 그는 사실 집안일을 주도하고 나서 잔소리가 늘었을 뿐이지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아! 누구에게나 삶의 밸런스를 지키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ㅎㅎ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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