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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Sep 11. 2024

오늘 완전 럭키비키잖아~

오늘의 감사할 일을 하나씩 찾아보기

주말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중1 딸내미가 알려준 '원영적 사고'와, '럭키비키'라는 단어는 나에게 10대 아이들의 핫한 유행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단어가 있구나, 신기하네 정도의 생각을 하고 금세 잊고 살았는데,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게 자꾸 보인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서도 보이고, SNS는 물론이며, 심지어 동료들과의 수다에서도 회자되었다. 이미 한물 간 유행어라고는 하지만,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을 위해 살짝 설명을 곁들여 본다.


원영적 사고 :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의 긍정적 사고를 일컫는 단어 - 원영이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럭키비키 : 행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럭키(Lucky)와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Vicky)를 연달아 쓴, 장원영이 만든 단어 - 부정적인 상황에서 초긍정적인 사고를 할 때 '럭키비키'라는 단어를 스스로 사용함


요즘 나의 회사 생활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가끔씩 일도 놓고 정신도 다 놓아 버리고 싶어 진다. 친한 동료의 강제 발령과, 아끼는 팀원의 퇴사,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악성 댓글 등 회사생활의 삼재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17년 차 회사원이라 이런 일 저런 일 겪을 만큼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이건 뭐 다른 차원이다. 마음속에 늘 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어쩌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원해서 나가야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여기에 희망이 있을까 매일 의문을 품는다. 당장 오늘 그만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을 매번 마주하고 있다. 나를 아끼는 동료들은 내 마음 상태가 괜찮은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곤 한다.


키비키라는 단어를 현재의 나에 대입해 본다.

나에게 최악만 있을까? 그건 분명히 아닐 것이다. 부정으로 꽉 찬 머릿속에서 긍정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오늘 하루 감사할 일들을 찾아봤다.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나와 오랫동안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었던 팀원이 비록 퇴사하지만, 무탈하게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퇴사 이후에도 친구같이 지낼 수 있다는 믿음.

지난주 몽골로 휴가를 갔던 팀원이 이번 주 복귀해서, 중요한 콘퍼런스 준비를 같이 하며 일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 (지난주에는 혼자 일하며, 팀원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연락을 간신히 참.... 았다...)

우리 사무실 옆에 위치한 회사에서 페인트 칠을 시작해 냄새 때문에 하루종일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그 핑계로 덕분에 빨리 퇴근해서 여유를 즐긴 것.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전 직장 동료와 대학 절친의 카톡 안부를 받은 것. 거의 몇 달 만의 연락인데 너무 반갑고 감사함.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1시간 동안 글을 쓴 평화로운 출근 전 아침 시간. (종종 훼방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고장 나 작동하지 않던 커피머신이 아침에 보니 말끔히 고쳐져 있어, 업무를 시작하기 전 꼭 필요한 카페인을 수혈할 수 있었던 것.

요즘 빌런으로 떠오른 전기차를, 오늘도 무사하게 잘 타고 출퇴근한 것.

비록 일이 많아 점심을 회의실에서 먹으며 노트북을 놓지 못했지만, 나의 점심 걱정을 해준 동료의 따뜻한 말 한마디.

깜빡하고 있다가 밤에야 생각나 보낸 생일축하 카톡에 더 큰 감동을 표현해 준 동료.

매번 늦게 퇴근하는 나를 대신해 빨래, 저녁식사, 청소까지 싹 다 도맡아 해서 해준 우렁신랑 남편의 듬직함.

밖은 무덥지만 사방이 뚫려 있어 바람이 잘 드는 우리 집의 시원한 저녁.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분들의 글을 잘 읽지도, 댓글도 남기지 못하지만 내 글에 찾아와 발자국을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


아니, 이거 뭐야~~ 완전 럭키비키잖아!

온갖 불행이 나에게만 한꺼번에 들이닥쳐, 넌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외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감사함과 긍정은 찾는 자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 옆에 떡하니 있어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떻게 살 것인가. 불행이라 생각한 것들에 잠식될 것인가, 아니면 반짝거리는 햇살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것인가.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돌에게, 삶을 관통하는 지혜를 배웠다. 이 세상은 아직도 누구에게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배울 것 투성이다.

선물같은 하루가 오늘도 나에게 주어졌다. 이 아침을, 하루를 럭키비키의 마음으로 시작해보련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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