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대학에 입학해 혼자 자취를 하던 시절, 심심하지만 돈이 없어 친구도 못 만나고 별로 할 게 없던 나는 학교 도서관으로 종종 향하고는 했다.
대학교 입시공부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도 읽고, 영화감상실에서 무료 영화도 보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 우연히 시청각자료실에 있는 재즈 음반을 듣게 되었다.
누구의 어떤 음반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나의 첫 재즈 감상은, '아,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구나.'와 '나 이런 음악도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두 가지였다.
하지만 집에 제대로 된 오디오도 없었고 설령 있더라도 음반을 살 돈으로 술을 사 마실 나이였기 때문에, 재즈 감상은 기억 저편으로 묻혔다.
다시 재즈가 생각난 건 대학교를 휴학하고 필리핀으로 3개월 어학연수를 갔었던 때이다.
원어민 선생님과 첫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고, 음악감상을 취미로 대답한 나에게 선생님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셨다.
"What kind of music do you like?"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간단하게 답했지만, 선생님은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어떤 재즈 가수를 좋아하냐, 재즈 악기 중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재즈 장르를 좋아하는지까지...
영어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데, 잘 알지 못하는 재즈 장르와 가수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다행히도 이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선생님은 나에게 재즈 가수 한 명을 소개해주셨다.
바로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친절한 선생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직접 음악 테이프도 빌려주시며 들어보라 하셨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내가 재즈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진득하게 표현되는 그녀의 음색은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와 같은 악기와 어우러져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엘라 피츠제랄드가 누구인지, 재즈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복학을 했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심심했던 나는, 도서관에서 재즈의 역서와 재즈란 무엇인지에 대한 책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재즈 : 재즈는 19세기말 ~ 20세기 초 미국 뉴올리언스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서 유래된 음악 장르로 블루스와 래그타임에 뿌리를 둔다 (출처 : 위키백과)
엘라 피츠제랄드 : 빌리 할러데이, 새러 본 등과 함께 재즈계 '3대 디바'로 불리며 20세기 전반기를 장식한 여성 재즈 싱어들 중 본좌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출처 : 나무백과)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재즈를 책으로나마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길거리나 호텔등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재즈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빌리 할러데이 노래를 듣고 용기 내서 재즈바에도 한번 가봤으며, 재즈가 주는 감동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었다.
내가 왜 재즈를 좋아하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재즈는 나와 반대의 성향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즉흥적인 멜로디.
나는 파워 J의 성향으로 계획에서 어긋나는 걸 싫어하고 잘 못 견딘다.
하지만 재즈는 즉흥 연주곡이다. 악보가 있더라도 현장에서의 분위기나 연주자, 가수의 감정과 판단에 따라 변주될 수 있다는 점이 나와 달라 매력적이다.
그리고 재즈에는 '여유'와 '낭만'이 있다.
음표와 음표 사이의 여유, 그리고 다른 악기가 연주될 때 묵묵히 받쳐주는 공기와 가수의 침묵.
늘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해 잠시의 빈틈도 못 견디는 나에게, 재즈는 내가 비로소 마음을 놓고 숨을 쉴 수 있는 영혼의 음악인 것이다.
사회인이 된 지금은, 돈은 생겼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재즈를 멀리했다.
핑계를 하나 더 대자면 우리 집에서 아무도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틀어놓을 수 없었다는 것?
하지만 나 스스로도 이 모든 건 핑계인 걸 안다.
그리고 나만의 휴가 시작인 오늘, 그 시절 내가 빠져 있었던 재즈 감상을 해봐야겠다 마음먹는다.
재즈를 통해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다.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