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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Dec 11. 2023

카카오가 코코아가 되기까지

따뜻한 영혼의 음료 코코아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 마시는 코코아 한 잔은 특별하다.

코코아가 담긴 따뜻한 컵을 잡는 순간부터 꽁꽁 얼어붙은 손에 온기가 퍼지며, 달콤한 첫 한 모금이 입에 닿으면 차가웠던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으며 행복해진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겨울이 오면 눈썰매장에서 실컷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한 후 밖에 있는 자판기에서 단돈 300원으로 코코아, 아니 핫초코를 뽑아 마시곤 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보는 자판기도 신기했던 것 같고, 달콤한 코코아 맛도 잊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식당을 가던 카페를 가던 코코아를 줄곧 찾았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코코아를 카페에서 주문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 덕분에 코코아의 세계를 경험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스트레스를 너무 받거나 피곤할 때 한 번씩 찾아 마시곤 한다.

만약 코코아가 단 맛만 났다면 내 취향상 그다음에는 다시 주문하지 않았을 텐데, 단맛 뒤에 숨겨진 쌉싸름한 맛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딸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웹툰이자 만화는 조경규 작가의 '오므라이스 잼잼'이다. 

이 만화는 여러 음식을 스토리로 엮어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주곤 하는데, 오므라이스 잼잼 책 5권에 코코아에 대한 추억과 역사를 소개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미지 출처 : 오므라이스 죔죔 5권 212-213p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마시는 코코아는 쓰디쓴 카카오 열매로 만든다고 한다.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카카오나무는 열매가 오렌지색이 되면 수확을 하고, 이 열매를 갈라 빼낸 씨를 과육과 함께 발효시킨다. 이후 발효가 끝나면 씨만 골라내 건조를 하고, 커피 원두와 마찬가지로 블렌딩 하고 볶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초콜릿 특유의 맛과 향이 생겨난다고 한다.


카카오의 원산지 남아메리카의 터줏대감인 아즈텍인들은 뜨거운 돌 위에서 방망이로 카카오 원두를 갈아 액체 상태로 만들고, 여기에 매운 고추를 넣고 달여 먹었다고 한다. 이 음료를 먹으면 이상하게 힘과 용기가 나서 전투에 나가기 전 즐겨 먹었다고 하며, 남미를 정복하러 온 유럽인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세월과 지혜를 거치며 카카오 열매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여러 방법이 나왔는데, 가장 혁신적인 것은 압축기를 이용해 카카오를 버터를 추출하고, 남은 덩어리를 갈아서 코코아 가루를 분리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단 맛의 설탕이 더해지면서 우리가 지금 흔히 마시는 겨울의 대표 음료 '코코아'가 된 것이다.


쓰기만 한 카카오 원두가 달콤한 한 잔의 코코아로 변신하는 마술.

조상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한다.





나는 요즘 글을 쓰며 내 글이 너무 진지하기만 해서 재미없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치 씁쓸한 카카오 원두처럼 내가 쓴 글의 쓴맛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브런치를 둘러보다 보면 내용은 짧고 가벼우나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글들이 많다.

나는 라이킷을 많이 받은 이런 글들이 너무 부럽기도 하고 배가 아프기도 하다.

나도 재치 있고 재미난 글들을 척척 쓰고 싶은데, 내 글은 한없이 진지한 궁서체로만 써지는 느낌이라서...


그러다가 다시 깨닫는다.

카카오가 코코아가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지금 그 시행착오를 여러 글들을 쓰면서 거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당장 나의 글에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만들려고 무리하다가는, 내가 가진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나의 쌉싸름한 맛의 글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코코아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꾸준히 나의 글을 쓰며 내 영혼부터 들여다봐야겠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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