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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Dec 18. 2024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데까지 , 10년

참 오래도 걸렸다

"저, 이제 퇴사하려고요."

한 달 전쯤 친한 동료와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일단 놀란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되묻는다.

"나가서 뭐 하려고?", "퇴사하시면, 다음이 정해져 있는 거예요?"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러나 내가 그다음 말을 이어가면, 다들 순간적으로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특별한 이직 계획은 없고요, 코칭하려고요."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볼법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고, 여태까지 해왔 일은, 코칭이라는 분야와 백만광년 정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18년 동안 해왔던 일을 내팽개치고, 갑자기 180도 다른 일을 한다고 말하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어떤 직업을 갖겠다가 아니라, 이제 막 공부 좀 해보려고 한다는 대답으로 이어지니 나보다 그들이 더 답답하겠지. 진심으로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지금은 퇴사 결심을 번복하고, 다른 부서로 옮겨 일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가족을 포함해,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훨씬 안도한다. 이 추운 겨울 날씨보다, 훨씬 매서운 추위의 구직 시장에 나가서 어떻게 살 거냐고 염려했던 그들이기에, 이해가 된다. 결정을 번복하기까지 괴로워하며 번뇌했지만, 일단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는 홧김에 결정한 것도 맞기 때문에, 시간을 벌고 다음을 준비하면 좋겠다 싶었다. 

아무튼, 퇴사를 말하고 나니, 사방에서 많은 질문과 의견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나의 퇴사 결심까지의 여정과 진심을 아는 지인들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거야?"

그들은 나가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라는 걱정보다는, 내가 발견한 '좋아하는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우리는 회사원이고, 지금 직장을 천년만년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두 앞으로 지속 가능한 일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요소가 가미된다면, 평생 직업으로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10년이나 걸렸네."

반짝이는 눈망울로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을 해줬다. '헉'하는 눈치다. 그들이 원하는, 속성으로 좋아하는 것 찾기에 대한 대답은 나도 전혀 없기에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3년 우연히 코칭을 알게 된 이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방향성을, 이제야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앞의 7~8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세월이 필요했다. 이전 글에서 여러 번 밝힌 대로, 연말마다 무지하게 방황했다. 11-12월이 되면, 현타가 찾아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나는 뭘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지? 괴로운 채로 답을 찾아 헤맸다. 타로, 사주, 커리어 상담, 루틴 만들기, 강점 분석 등 참 많이도 여기저기 찝쩍댔다. 제발 나에게 누군가 '인생의 정답'을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봐도, 내가 원하던 답은 없었다. 아니지, 답을 계속 주고 있었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달까. 책도 읽고 자기 계발 강의도 들었지만, 내 생각은 늘 제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흑역사의 시간이기도 했다.


축적의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는지, 이렇게 몇 년을 헤매고 갈팡질팡하다 보니 약간씩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한줄기 빛이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저런 시도들을 통해 발견했던 건, 아주 사소한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상담이나 루틴모임에서는 매일 질문을 주었고, 답을 해야 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일할 때 가장 신나게 일할 수 있나요?

나에게 여유 시간이 생긴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나요?

내가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올해 감사한 일을 3가지 찾아본다면 무엇일까요?

등등의 질문이 주어졌다. 어떤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해,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또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면서, 내 생각의 변화를 알게 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질의응답을 하다 보니, 조금씩 내가 보였다. 그동안은 관심 주지 않았던 나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자꾸만 나 스스로가 궁금해졌고, 그럼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건 뭘까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못 찾은 분들이 계신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고 하고 싶다. 처음엔 어색하고 뭐 하는 짓인 가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알게 되고, 나에게 도움이 되려면, 질문과 관심이 아주 중요하다. 하루에 한 줄씩, 오늘 좋았던 아주 사소한 것들을 적어 보는 것도 괜찮다. 출근길에 들었던 신곡이나, 졸린 회의 시간에 누군가 건넨 과자이거나, 옆에 앉은 김대리의 패러디 개그 거나. 그 어떤 것도, 나를 발견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다가, 어제 처음으로 마셔본 에스프레소가 의외로 맛있었다 느끼면, 그걸 한 번 써보자. 기록으로 남겨 보자. 일기처럼 한두 줄 쓰다 보면,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나?라고 스스로 놀라는 순간도 생길 것이다. 


지금 내가 찾은 코칭이라는 좋아하는 분야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엄청 끌려서 해봤는데,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일단 시도해보려고 한다. 해보면 알게 되겠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 연인도 마찬가지지 않나.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면서 좋아한다고 하면 뭐 하나. 차일 감수를 하고 고백도 해보고, 사귀어 보면서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아는 것처럼. 

퇴사하고 멋지게  코칭으로 세컨드 커리어를 시작했다의 스토리면 참 좋겠지만, 그건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좋아한 걸 발견한 자체로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나의 앞날을, 나 스스로 응원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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