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샵에 진심인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뜬금없이 웬 손뼉이냐고? 올해부터 새로 옮긴 부서에 적응을 하며, 내 머릿속에서 이 문장이 계속 맴돈다. 작년까지 근무했던 부서에서는, 내가 속한 마케팅팀에서 늘 워크샵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우리 팀을 제외하고는, 다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이파이브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늘 나 혼자, 우리 팀만, 허공에 손을 흔드는 기분이었다. 아무와도 부딪치지 못한 손바닥은 민망함에 몸서리치다가,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우리 팀을 무시하는 건 아녔는데, 반대로 별 호응을 해준 적도 없다. 이 예시를 보시면, 이해가 좀 더 쉬우시리라.
"(중략) 여기까지 3월 워크샵 계획 초안입니다. 각 팀별로 TFT 구성을 위한 인원 선발 부탁드려요."
이렇게 내가 워크샵 계획을 말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두 종류 중 하나였다. '넵, 알겠습니다.' 등의 간단한 동의, 혹은 '워크샵으로 A장소까지 가기에 너무 먼데요? 다른 데 가면 안 되나요?' 등의 반대 의견. 대체적으로 이건 별로다, 저건 다른 게 낫다 등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더 많았다. 때로는 저녁 메뉴가 마음에 안들고, 때로는 프로그램이 그게 뭐냐고 지적질을 했다. 사실 하루나 이틀의 워크샵을 위해, 50명의 인원이 갈 수 있는 장소, 단체를 만족시킬만한 메뉴, 작년보다 더 재미난 프로그램 등등을 알아보느냐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냥 참석만 하는 사람들은, 준비하는 사람의 수고를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러니 눈치 없이 잔소리나 늘어놓는 것이겠지. 머릿속에서는 '너네가 어디 한번 직접 준비해 봐라!'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올해 1월부터 부서를 옮기고, 여러 차례 문화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우선 워크샵을 대하는 부서원들의 태도가, 전 부서와 180도 다르다. 달라도 이건 너무 다르다. 손뼉이 자주 마주칠뿐더러, 그 소리 또한 경쾌하기 짝이 없다. 신나는 박수 소리는, 손뼉이 부딪힐 때만 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얼마 전 회식을 하면서, 누군가가 물어봤다.
"저희 부서는 워크샵 언제 가요?"
전 부서에서 내가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일단 짜증부터 났을 것이다. 준비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누적된 무관심과 부정적 반응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5-6월쯤이라고 워크샵 기간을 얘기하자, 그 이후로 놀라운 반응들이 펼쳐졌다.
"오~ 그럼 제가 장소 알아볼게요!"
"저는 퀴즈 이번에 완전 다 뒤집어엎어서, 다들 쉽게 못 맞추시게 만들 거예요."
"우와! 워크샵 너무 재밌겠다~~~"
신기하게도, 여기서는 워크샵이 천덕꾸러기 애물단지가 아니라, 환영받는 존재였다. 서로 워크샵에 참여하겠다, 준비하겠다라며 말을 이어나간다. 장소 선정, 프로그램 기획 등을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팀원들의 말에, 절로 눈이 동그래졌다. 하나같이 워크샵에 진심이다. 모르는 게 없고, 안 해본 게 없다. 여기에 이어 작년에 갔던 워크샵의 유쾌한 추억을 누군가 꺼내 놓으면, 다들 깔깔대며 한 마디씩 보탰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듣는 내내 궁금해졌다. 전 부서에서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워크샵을 가게 만드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 같이 즐겁게 참여하게 만드는 일이 더 어려웠다. 기껏 가서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생겼고, 사진을 찍기 싫다며 은근슬쩍 없어지는 인원도 있었다.
전 부서와 다른, 이 극명한 온도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내가 생각한 답은, 사람과 조직 문화이다. 우선, 지금 속한 부서는 사람들이 참 긍정적이다. 해맑고 적극적이다. 밝은 전구를 몇 개나 켜놓은 느낌이랄까. 깊은 어둠 속에 있다 온 나는, 처음엔 전구의 불빛이 눈부셔 적응이 안 되었더랬다. 인위적인 밝음이 아닌가 의심부터 했다. 그러나 밝음을 계속 지켜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 밝음에 전염되어 갔다. 전구의 불빛과 색깔은 각자 다르지만, 서로 깜빡이며 좋은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이 갑자기 무언가를 급하게 지시해서, 내가 계획했던 업무가 틀어져버린 상황이라고 해보자. 전 부서와 현 부서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게 나뉠 것이다.
- 전 부서 : 어휴, 또야? 저 이렇게는 일 못하겠어요! 이걸 대체 왜 해야되는거야...(궁시렁궁시렁)
- 현 부서 : 앗, 정말요? 휴... 뭐 어쩔 수 없죠. 상황이 이러니, 타임라인 알려주시면 최대한 맞춰서 해볼게요.
어떤가? 차이가 좀 느껴지는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하고,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반응이, 나에게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또 한편, 이런 대답을 옆에서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누구건간에 정말 예뻐 죽겠다. 긍정이 얼마나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7년을 부정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다 온 나는, 부정이 디폴트고, 긍정은 유니콘 같은 존재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전 부서에도 긍정적인 신입사원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다수를 휘어 감싸고 있는 부정적인 기운에 서서히 물들어갔던 것 같다.
워크샵에 진심인 팀원들을 지켜보며, 검게 물들었던 내 마음의 때를 벗겨내야겠다 생각한다.
이들이 재미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기꺼이 몸바쳐 웃으며 즐겨야겠다. 장소나 식당 선정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으면, 전 부서에서의 경험을 살려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들이 계속 손뼉을 신나게 부딪힐 수 있도록, 가끔 힘내라고 밥도 사줘야겠다.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며 엄지척을 날려주고 싶다. 이들이 어두운 현실에도, 밝게 빛을 내는 마음을 최대한 오래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워크샵이 일을 위해 억지로 갔던 행사였다면, 이들과 함께하는 워크샵은 다를 것 같다. 아직 한참 남은 워크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서로를 밝게 비쳐주는 이들이 참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