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피곤하게 산다는 말을 듣습니다만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말 그대로 ‘고도로 민감한 사람’을 뜻하는 이 용어는 요즘 꽤 자주 언급된다. 'MBTI 대신 HSP 테스트 뜬다'는 제목의 기사까지 있을 정도다.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5022102212
SNS를 거의 하지 않다보니, 한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을 통해서 말이다. 책에는 HSP 테스트 항목이 소개되어 있었는데(이 기사에도 있다), 문항을 읽어 내려가며 흠칫 놀랐다. 26개의 질문 중, '아니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항목이 하나도 없어서다.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들으며 자라긴 했다.
"넌 누굴 닮아 이렇게 예민하냐... (아마도 아빠 엄마겠죠?ㅎㅎ)"
이모가 며칠동안 정성스레 떠준 스웨터의 감촉이 너무 따가워, 입기는 커녕 살에 닿는 것도 힘들어했다. 아빠가 큰맘먹고 장만한 첫 차를 타고 가던 길, 멀미를 참지 못해 구토를 해버렸.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할 수도 있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떤 것은 너무 끔찍해서 참을 수 없었고, 또 어떤 것은 너무 좋아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이 기질은 크게 바뀌지 않아, 종종 남편에게도 비슷한 말 듣는다.
"그냥 좀 참으면 안돼?"
밥을 먹으면서 듣는 음악 소리가 조금만 커도, 차에서 켠 에어컨 온도가 0.5도만 높거나 낮아도, 나는 기어이 버튼을 돌리곤 했다. 이 자극들이 나에겐 너무 크게 다가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만 아파도 난리 법석을 떠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다.
이런 내 성격은 다행히도, 학교에서나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사회적 동물로서 어떻게든 '평범한 사람'처럼 적응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급식 잔반을 한데 섞으며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친구들이 보고 있어 참았다. 거칠거칠한 체육복이 입기 싫어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첫 회식 자리에서, 예전부터 피하던 소주의 소독약 냄새에 숨이 막힐 것 같아도, 일단 들이켰다. 회사에서 배정된 자리가 낯설고 조명이 눈에 거슬려도, 내가 좋아하는 소품으로 균형을 맞춰갔다. 동료나 상사가 무언가를 제안해오면, “싫어요”보다는 “해볼게요”가 입에 먼저 붙었다. 토요일 회사 단체 등산이 있을 때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정상까지 올라갔다.
이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나를 오해했다. 세상 만사에 둥글둥글하고 수용성 좋은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어디 가겠는가.
잘 숨기고 살다가도, 예민함이 극도로 올라오면 제어가 잘 안되었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어 매번 속으로 삼키거나, 종종 애꿎은 남편에게 쏟아냈다.
이런 스트레스 레벨은 팀장이 되고서 더 늘어났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였고, 신경 쓸 일들은 끝도 없었다. 모두 다른 팀원들의 성향과 컨디션의 미세한 결을 맞추기 위해 늘 긴장된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다. 누군가 표정이 안 좋아 보이, 나 때문에 그런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나 혼자 하면 이틀 안에 끝날 일을, 다른 사람들의 사정과 감정 살피며 가느냐 일주일 넘게 끌고갈 때도 있었다. 그러다 결 자책을 했다. 나는 왜 이리 능력이 없는가, 내가 이렇게 하면 팀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팀이 나 때문에 더 망가지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예민함의 발톱이 자꾸만 내 안으로 파고 들어, 스스로를 할퀴고 있었다.
팀장 8년차, 나의 예민함을 더 이상 탓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왔다.
가장 먼저 한 건,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조심스럽게 내 성향을 털어놓았다.
“내가 원래 좀 예민한 편이야. 작은 변화나 디테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금만 불안해도 이것저것 체크를 더 하게 되더라고. 그게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야. 가끔 나도 ‘좀 지나쳤나’ 싶어서 반성하긴 해. 그런데 그게 잘 안 고쳐져.”
이 말의 끝에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만약 내가 너무 심하게 하면 꼭 제어해 달라고...설령 내가 이 말을 꺼내면 나를 오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후부터는 서로를 맞춰나가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보고서를 가져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팀장님 성격상, 이건 이 우려 때문에 안된다고 하시겠지? 그럼 이건 이렇게 바꿔서 갖고 가야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지나친 걱정이 팀원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참는 훈련을 했다. 가끔씩 내 감각은 '아니야'라고 외쳤지만, 팀원들이 제시하는 의견과 타협하고 발전시키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평소 나는 내 민감함을 못 견뎌 할 때가 많았는데, 팀원들에게 솔직하게 말한 이후로는 이런 내 성향을 더 편안하게 드러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활용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읽혀지는 편이라, 팀원과 1:1 대화를 할 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걱정되네."
그들은 흠짓 놀라며, 그 다음부터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곤 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예민함은 때로, '돌봄의 감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기질이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끔씩 감정 이입이 심하게 되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팀원의 입장에서 들어보고 도와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걱정이 많은 성격 덕분에, 남들보다 위험 요소를 빨리 감지하고 제거하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만들며, 팀원들과 함께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했다.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예민함은 나를 괴롭히는 결점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감각 중 하나라는 것을.
남들이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 누군가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조용히 손 내밀 수 있는 감수성.
팀장의 자리는 때때로 단호함과 결단력이 요구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건 ‘사람을 사람답게 바라보는 마음’ 아닐까. 예민해서 피곤한 팀장이 아니라, 섬세하기에 다정한 리더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