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올라가고 싶고, 누군가는 피하고 싶다
얼마 전까지 내가 몸담았던 부서가, 최근 '승진' 때문에 시끌시끌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 성장율이 줄어들며 비용 절감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신규 채용도 막히고 대부분의 승진은 보류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동료 A 한 명만 승진이 된 것이다. 하필이면 사내 정치로 유명한 동료만 승진하게 되어, 다른 동료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래 승진 후보자였던 다른 동료들은 아마 훨씬 더 허탈하리라. 개중에는 일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승진하지 못한 동료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부류 말이다. 그 중 한명은, 승진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퇴사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부서 민심은 흉흉해지고, 승진 기준이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단다.
뉴스에서는 승진에 대한 MZ 세대의 달라진 시선에 대한 트렌드가 보도되고 있다.
'리더포비아(Leader+phobia)', '자발적 언보싱(Unbossing)' 과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들린다. 자발적 언보싱이란, 관리자나 임원 등 더 높은 책임이 따르는 자리로 승진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리더의 자리가 더 이상 '선망'보다는 '부담'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너 그러 팀장된다!"
이 말은 경고와 농담 두 가지가 섞여 있다. 동료가 열심히 일하다가 진짜 팀장이 되면, 책임감에 못 이겨 번아웃이 올까봐 걱정을 한다. .
왜 누군가는 승진을 간절히 원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승진을 기피하는걸까.
평생 직장 개념이 있던 시절, 승진은 직장인의 성장에 중요한 관문이었다. 사원에서 주임,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레 경력을 쌓아 나갔다. 승진을 한다는 것 자체는, 인정의 증표이자 축하의 대상이었다.
반면 수평 조직 문화가 장착되고 있는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승진을 했을 때 받는 권한보다, 더 많은 책임감이 부여된다. 팀 단위로 잘게 쪼개진 회사에서, 팀 단위의 성과는 팀장 책임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팀원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팀장이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팀장을 보는 팀원은,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결코 팀장님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만약 직장인들에게 익명 설문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다음의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 것이다.
"승진하고 싶지는 않은데, 연봉은 더 많이 받고 싶다."
직장인들도 누구나 성장에 대한 욕구는 있다. 다만 그것이 요즘은 꼭 '승진'의 형태로 충족되지 않아도 된다. 단순히 팀장이 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다양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 내가 일한 것만큼의 보상만 충분히 된다면 굳이 승진을 안 해도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보상이 승진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교육의 기회나 성과급 지급이다. 또한 내가 다니는 회사가 평생 직장이 아니므로, 자기계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가 어려워져진 요즘 같은 시대에는,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임원을 보며 오히려 평사원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승진은 더 이상 직장인들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중간 관리자가 되면 평소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게 되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복합적인 해결력이 높아진다. 그 위치에서만 알 수 있는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다. 실제로 동료들에게는 승진하기 싫다고 얘기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승진을 원하는 동료들을 많이 봐왔다. 다만 조직 분위기상 승진하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는 것이다. 설령 원한다 할지라도, 평가 기준이 애매하고 인사 이동이 불공평한 경우가 많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승진에 대한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그 기준에 맞는 인재를 리더로 승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승진이 누군가에게 적절한 동기가 될 것이고, 그 과정을 보면서 승진에 대한 조직 문화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승진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는 바로 '나 자신'의 방향성이다.
승진 자체가 아니라, 승진을 바라 보는 내 마음이 '왜' 그런지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동료의 이야기나 뉴스만 보고 승진을 단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살펴봐야 한다. 직장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질문해야 한다. 만약 직장인이 그 답이 아니라면, 미래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성찰해야 한다. 내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승진도 연봉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