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흔한 오해

잘 쓰면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는

by 수풀림

"으아~~~ 새벽 2시까지 PPT 만든다고 잠도 못 잤는데, 내용 싹 다 갈아 엎으래요."

이번 주에는 각 부서에서 신제품 런칭 계획을 발표하는 회의가 있었다. 사장님을 비롯, 20여명의 임원진이 참석하는 아주 부담스럽고 중요한 자리였다. 각 부서의 발표 자료를 미리 취합하는데,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발표하기 싫다는 건 애교 수준이고, 이것 때문에 퇴사하고 싶다는 진담 섞인 농담도 오갔다. 발표자 대부분은, 프리젠테이션 경험이 많지 않은 실무자들이었다.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도 잘 몰라 우왕좌왕하며 준비를 했다. 다들 불안한 마음에 발표 직전까지, 최최최최종 버젼 자료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밤새 달달 외운 스크립트를 슬쩍 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진행했다.

준비 과정은 괴로웠지만, 다행히 발표자 모두 칭찬을 받으며, 회의는 무사히 끝났다.


프리젠테이션은 업무의 일부를 넘어, 직장인의 생존 기술이 되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다. 여러 부서 사람들과 함께 이번 발표를 준비하며, 내가 발견한 점들을 나누려고 한다.


프리젠테이션은 '포장'을 위한 수단이다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바로 프리젠테이션은 '과대 포장'이라는 시선이다.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발표, 화려한 슬라이드와 말솜씨로 감싸는 ‘말발 쇼’라는 인식이다. 특히 과학 전공 석박사 출신이 많은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오해가 더욱 깊다. 논문, 실험처럼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이 익숙한 이들은, 비즈니스 프리젠테이션처럼 설득과 감성이 중요한 발표에 거부감이 있다.

"사장님 눈에 띄려고 쇼하는거 아냐?"

"결국 자료 멋들어지게 만들고, 말만 잘하면 평가 잘 받는거잖아"
이런 말들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리젠테이션은 결코 ‘겉치레’를 위한 것이 아니다. 특정 사실을 감추거나 과장하는 게 아니라, 핵심을 더 효과적으로,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기술이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나 데이터라도,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쩌면 좋은 프리젠테이션은 포장이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해당 분야 전문가인 담당자 혼자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주는 것. 그게 바로 프리젠테이션의 힘이다.


프리젠테이션에는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록 좋다

이번 회의에서 각자 10분 남짓한 발표 시간 동안, 소화할 수 있는 슬라이드는 5-6장. 총 6개 부서에서 가져온 슬라이드를 보다 보니, 슬쩍 웃음이 났다. 5장의 슬라이드에, 수없이 들어찬 빼곡한 텍스트가 보여서 말이다. 기획에 맞춘 스토리를 짜고, 그 이야기를 슬라이드에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한 장에 들어간 것이다. 부장님이 말씀하신 것도, 과장님이 꼭 추가하라고 한 것도 넣어야 하다 보니 고민 끝에 그렇게 만들었다 말했다. 나도 PPT를 만들어본 입장에서, 창작자의 심정은 십분 공감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핵심을 흐린다.

청중들은 발표자의 말을 들으며, 슬라이드를 동시에 읽고 해석할 수 없다. 슬라이드에 글이 많으면 많을수록, 청중의 시선은 화면에 머물게 될 확률이 크다. 발표자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듣지 않은 채 말이다. 이런 경우 가장 큰 부작용은, 핵심 내용이 청중들에게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만든 슬라이드는, 정보를 ‘많이’ 담는 것이 아니라, '핵심 내용만 임팩트 있게' 표현하는 것이다. 마치 잘 만든 광고처럼, 슬라이드의 그림 하나만 봐도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 외에도 프리젠테이션을 향한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다.

- 발표는 말 잘하는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

- 애니메이션 효과를 많이 넣으면 넣을 수록 좋다

- 실적이 100%인데, 굳이 발표 자료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 발표에서 중요한 건 기획이 아니라, 예쁜 디자인과 말솜씨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프리젠테이션의 본질은 '내가 주장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떠올려보자. 그의 발표 자료는, 결코 화려하지도, 과장이 들어가 있지도 않다. 많은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발표에는, '핵심 메시지'가 항상 존재한다. 나머지는, 그 핵심을 수식해주는 역할이다.

만약 발표를 앞두고 있다면, 이번 발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핵심 메시지에 나만의 스토리를 입혀, 서사 구조를 만든다. AS-IS와 TO-BE를 보여주며, 예전에는 이랬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더 잘 해보겠다고 말해야 한다. 마치 글쓰기처럼, 기획을 하고, 구조와 뼈대를 만들며, 하이라이트 할 내용들을 부각해야 한다.


프리젠테이션은 사실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왠만하면 피하고 싶다.

나도 발표를 앞두고, 매번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말을 잘해야 한다’는 오해를 내려놓고 보면, 프리젠테이션은 오히려 내가 가진 생각을 명확히 정리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화려한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완벽한 말솜씨는 없어도 괜찮다.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리고 왜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가다.

나만의 ‘정리된 생각’과 ‘진정성 있는 메시지’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충분히 프리젠테이션을 잘 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누군가는 벌리고, 누군가는 주워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