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
회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곳에는 다양한 성향과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유독 대비되는 두 부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일을 벌리는 사람'과 '그걸 주워 담는 사람'이다.
성과 지표로 평가 받는 기업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늘 요구된다.
"2025년 하반기 계획 짜야 되는데, 좋은 의견 하나씩 내봐요."
"이번에 런칭한 신제품, 아직 시장 반응이 별로 없네. 인지도랑 반응률,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만약 상사가 이렇게 묻는다면, 팀원들은 머리를 쥐어 짜내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누군가는 마음을 활짝 열고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마치 공격수처럼, 골대에 공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계속 슈팅을 날리는 타입이다.
심지어 자기가 낸 아이디어에 스스로 감탄하며, "이거 진짜 괜찮지 않아요?"라고 들뜬 표정을 짓기도 한다. 남들의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회사에 공격수만 있다면, 경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날아오는 공들을 분석해, 골대에 들어갈 수 있는지 판단한다. 어떻게 공을 날려야 승률이 높은지 알려주기도 한다. 그것 뿐인가. 가끔 멀리 날아간 공을 주워 오기도 하고, 선수들이 싸우고 있으면 화해도 시켜야 한다. 그게 바로 현실화 담당자의 역할이다.
현실화 담당자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스친다.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이걸 누가 하지? 기획서 써서 승인 받고, 예산 확보하고, 고객 설문조사까지?'
"A안을 추진하면 리스크가 클텐데, 이 리스크는 나한테만 보이는건가?"
아이디어 하나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땀과 조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실행의 대부분은, 결국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닌 '주워 담는 사람'의 몫이 된다. 특히나 아이디어를 낸 주체자가 '상사'라면, 수비하기도 쉽지 않다. 상사가 너무 좋다며 추진해보자 하는데, 감히 누가 나서서 반기를 들겠는가. 그러니 이럴 땐 어떻게든 리스크를 줄이고 실행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다닐 수밖에 없다.
사실 회의실 안에서 5분 만에 나온 아이디어는, 현실이 되는 데는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아이디어를 주워 담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은, 조용히 기획서를 쓰고, 회의를 소집하고, 타 부서를 설득한다. 때론 진행 중인 업무를 중단하고 새 아이디어에 맞춰 업무 우선순위를 조정한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실행 없이 남겨지면 결국 ‘말’에 그친다. 아이디어가 성과로 이어지는 순간은, 늘 주워 담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우리 이거 해보면 어때요?”라고 가볍게 던진 말 뒤에, 그걸 진짜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회사에서는 보통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성과의 주인공’이라 부른다.
기존에 없던 길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판을 짜고, 때로는 조직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하지만 그 혁신이 진짜 빛을 내기 위해선, 누군가의 손으로 현실에 닿도록 다듬고 조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디어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실행은 조직을 움직인다.
모두가 일을 벌이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고, 모두가 주워 담기만 한다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둘의 균형이 맞아야 조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쏟아지는 아이디어를 주워 담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꽤 중요한 일이란 걸 이제는 알기에, 조용히 스스로를 응원하며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