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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면역력 키우기

'싫어요' 100번을 듣고 나서 알게된 것

by 수풀림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건 사장님이나 임직원도 아닌, 바로 '고객'이다. 회사란 기본적으로 고객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은 우리 회사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는 막강한 존재이다. 충성 고객이 많아져야 회사가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 신규 고객을 확보해야 회사의 성장이 계속된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고객을 모셔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2007년, 갓 입사한 신입사원 시절의 일이다.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와 입사 동기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업무는 '고객 조사'였다. 주요 고객은 대학교 연구실 소속 석박사 학생들과 교수님이었는데, 그들을 만나서 설문조사를 해야 했다. 어떤 실험을 주로 하는지, 어떤 제품을 쓰고 있는지, 구매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봐야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 정보를 미끼로 영업을 해야 했다. 고객에게 우리 제품을 소개하고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구매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매일 2-30명의 고객을 만나는 것이, 당시의 과제였다.

서울, 경기도에 있는 주요 대학교 실험실의 문을, 매일 두드렸다. 우리는 이걸 '계단타기'라고 불렀는데, 몇 층씩 되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샅샅히 실험실을 훑었기 때문이다. 고객을 찾아 질문을 던지고, 우리 제품을 홍보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인사를 할 때부터, 대부분의 반응은 냉랭했다.

“지금 실험중이라 바쁘니, 다음에 오세요.”

“이미 다른 제품 쓰고 있어요.”

그야말로 문전박대. 얼마 전까지 대학원 석사 학생이었던 나도, 찾아오는 영업사원들을 귀찮아했다.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나와 동기들은,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무조건 30명을 만나야 숙제가 끝나기 때문에, 거절당해도 다음 연구실 문을 노크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미소를 장착하고 다시 도전했다.

"안녕하세요~~~(최대한 하이톤으로) 저희 OO회사에서 왔는데요~~~"

전 고객에게 거절 당한 경험은 잠시 잊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음 고객을 만났다. 그렇게 열심히 만나다보면 간혹 우리를 반겨 주는 천사같은 고객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거절하고 자신의 연구를 하기 바빴다.


그렇게 하루하루, 거절의 횟수가 쌓여갔다.

이렇게 두 달의 과제를 수행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거절에 면역력이 생겼다. 거절은 고객이 기본적으로 말하는, 디폴트 옵션 같은 거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거절을 좌절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이번에는 문전박대 안 당하고, 설문조사에 응하게 할까?'

'바로 거절하면, 다음 멘트는 뭘로 치면 좋을까?'

고객에게 거절을 덜 당하는 동기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노하우를 물어봤다. 그리고 고객을 하도 많이 만나다보니, 그들의 공통 거절 포인트를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우회해서, 고객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방법도 함께 궁리했다.


물론, 이런 관점의 전환이 한번에 훅 하고 일어난 건 아니었다.

거절의 경험이 계속 쌓이고 쌓이니, 더 이상 거절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거절에 무뎌졌다고 생각했지만, 거절 자체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방법, 저 방법도 써보며 조금씩 노력했다.

"아, 많이 바쁘시죠? 당 떨어질 때 드시라고 초콜릿 사왔는데, 이것만 놓고 갈게요."

"이번에 논문 내신 거 정말 축하 드려요. 한 번에 통과하신 비결이 뭐에요?"

처음에는 숙제를 받은 대로 정보 조사, 제품 홍보에 대한 멘트만 했다. 그러다 고객이 '좋아할만한' 포인트를 찾아 나갔다. 힘든 대학원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듣거나, 논문을 쓸 때 어려운 점들을 물어봤다. 다행히 숙제 성공률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끔 그 때를 떠올려본다.

만약 그 때 거절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거절 당하는 것을 못 참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거절 당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고객에게 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업무 협조 요청에 딱 잘라 안된다 말할 때도 있다. 유명 대학을 나오고, 유수한 연구소에서 일하다 우리 회사로 이직하신 중고 신입사원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도, 바로 '거절'이다.

"제가 고객 입장일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반대 입장이 되서 고객한테 거절당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위축되네요."

아마도 여태까지는 거절 당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 거절이 더욱 힘들게 다가올 것이다.


누가 어릴 때부터 상상했겠는가. 내가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계속 거절을 경험할 것이라는 걸.

내가 거절할 때는 잘 모르지만, 거절 당하는 느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를. 그러나 백신을 맞으면 독감에 걸려도 덜 아프듯이, 거절도 당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면역력이 생긴다. 거절을 피할 수 없다면, 익숙해지면 좀 낫다. 반복되면 내 몸과 마음에 내성이 생기고, 그 내성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거절을 즐기기까지는 어렵겠지만, 무뎌지게 할 수는 있다. 거절을 우회하고, 내 의사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할 수 있다.


거절을 당해 본 사람만이, 거절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되는 것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거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아프지만 소중한 거절의 경험과 통찰이 쌓이고 쌓여, 직장인으로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직장인#거절#경험#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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