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괜히 '금'이 아니라니까
말에는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
회사 생활에서 말 한마디는, 나비효과처럼 작은 날갯짓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키곤 한다.
"그거 들었어? A 대리 퇴사한다던데?"
A는 지난 달, 상사와 크게 한판 하고, 친한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B부장 나한테 뭐 쌓인 거 있나봐? 진짜 내가 그 꼴 보기 싫어서 때려치던지 해야지. 에잇, 이번달까지만 다닌다! 아니~ 내일 당장 사표낸다!"
술자리에서, 단지 직장인 3대 허언 중 하나인 '그만둬야지'를 술주정처럼 내뱉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부서 곳곳으로, 빅뉴스로 퍼져 나간다. A가 B부장이랑 싸워서 그만둔다더라, 이번달 까지만 나온다더라, 다음 달에 경쟁사로 이직한다더라 등등 각종 소문에 소문이 더해진다. 정작 A는 술이 깨고 나니 퇴사 생각이 사라졌다. B부장이랑은 껄끄럽지만, 아파트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당장 이직할 곳도 없다. 하지만 A의 소문은 빠르게 B부장에게까지 들어가, 결국 퇴사 면담까지 하는 상황이 온다.
동료 C는 말을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속에 있는 말을, 특히나 '비밀'을 마음 속에 담아두 걸 힘들어 한다. 원래 말이 많기도 하지만,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서로의 신뢰를 쌓는데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거 진짜 비밀인데, D차장님만 알고 있어요. 이번엔 OO가 승진할 수 있을거야."
리더들끼리만 '탑 시크릿'으로 간직하고 있는 승진 정보, 은밀한 대화 끝에 술술 나온다. 승진 발표가 나려면 일주일이나 남은 상황이다. 그러나 C는 자기 팀원의 승진 소식을 손꼽아 기다렸던 D에게 빨리 소식을 전달하고 싶어, 결국 말해버린다. 그야말로 회사판 수능문제 유출 사건이다.
D차장이 이 기쁜 소식을 혼자만 알고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팀원에게도 넌지시 귀띔한다. 조건부로, '너만 알고 있어'를 붙였지만, 팀원은 '너'의 범위를 '우리'로 확장시켜 소식을 퍼뜨린다. 회사 베프 동료에게는, 승진턱도 미리 쏘며 승리를 자축한다. 아무도 몰라야 할 특급 기밀은, 어느새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기정사실이 된다.
사실 이건, 동료 C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순간들이 있다. 회사를 다니며 내가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거나 충격적이어서, ‘이건 꼭 누군가한테 말해야 한다’는 충동이 치솟는 순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하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건 직장에서 소속감을 확인하고, 연결감을 느끼려는 자연스러운 심리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며 때로는 동질감도 느끼고, 연민의 감정도 든다. 상대방과 공감대가 형성되며, 쉽게 친해지기 좋은 주제이다.
어떨 때는, 직장에서의 말은, 정보력이나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내가 가장 많이, 발빠르게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직에서 나의 입지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 정보 습득과 공유의 타이밍은, 직장 생활에서의 권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에서 말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을 전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결과는 무엇일까?”
“지금 내가 왜 이 말을 하려고 하는거지? 중요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아니면 친해질 수단으로서의 말?”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하지 말아야 할 많은 불필요한 말을 막을 수 있다.
말을 할 때의 즐거움은 참 달콤하지만, 그 뒤에는 책임이는 묵직한 대가가 늘 따라온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을 하더라도, 말의 방향은 자기 멋대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통제되지 않은 표현은, 때로는 큰 오해로 이어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냥 한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변명처럼 쓰이는 이 말은, 어쩌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책이다. 특히나 직장에서의 말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말 위에 관계를 쌓는다.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 마디로 튼튼하게 쌓아온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오늘 하루, 내가 꺼낸 말의 무게를 한번쯤 떠올려 보면 어떨까.
공기처럼 가볍게 뱉은 그 말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바위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말의 진정한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이어나갈 수 있다.
직장의 진짜 숨은 고수는,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고,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으며, 남을 배려하는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은 말하는 대신, 조금 더 귀를 열고 들어보자. 좋은 말은 ‘잘 듣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