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메 Feb 24. 2023

커피플레이스


나는 경주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경주를 가곤 하던 게 습관이 돼 이제는 안 가면 섭섭한 지경에 이르렀다. 날씨가 좋을 때도, 기분이 좋을 때도, 틈만 나면 경주에 간다.



내가 몇 해 전부터 다니던 카페가 있다. 처음 그곳에 간 날, 감색 뿔테 안경에 트렌치코트를 잘 차려입은 어느 노신사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기분 좋은 말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 나 커피플레이스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

그 순간 나는 그곳과 사랑에 빠졌다. 노신사의 한마디에 공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감정이 솟아남과 동시에, 그런 공간의 일부가 된 내가 좋았다.


일하는 사람들의 느낌도 좋았다. 친절하게 반겨주는 기분. 최근엔 손님이 많아져 조금 정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도 분명히 따뜻함이 있다. 자꾸 그들과 눈을 맞추고 싶다. 오고 가는 눈인사 속에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나는 굳이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움을 조금 타는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손님과의 적당한 거리가 그들의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 줄 것이라는 나만의 배려이기도 하다.


유리문 밖으로 능이 하나 보인다. 그 능 위로 세 그루의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그 나무들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여름에는 푸릇푸릇하고 무성한 잎사귀를 뽐내고, 가을엔 그 잎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으며, 겨울엔 그 잎이 다 떨어진 뒤 남은 뒤틀린 가지가 힘차게 뻗어있다.

가게와 능 사이로 드문드문 차와 사람들이 스쳐간다. 커피를 마시며 들리는 그라인더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대화소리. 그런 백색소음들 속에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은 마음을 가득 안고 가게문을 나서는 내게서 어떠한 희망이 솟아난다. 이대로 일상으로 돌아가 나의 삶을 다시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그런 희망 말이다.



내 일기장의 마지막 단락은 언제나 ‘나는 잘 될 것이다.’, ‘나는 잘할 수 있다.’와 같은 희망찬 문구다. 그 문을 나설 때와 다르지 않다. 그런 희망들은 나를 잘 살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곳은 나를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희망은 어느새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귀여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