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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귤씨 Aug 14. 2023

'속도'가 자본과 멀어지는 곳에서  짜장면 기다리기

[D+5]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것

바야흐로, 속도= 자본이라는 공식이 암암리에 허용되는 세상이다. 빨리 빨리라는 문화를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안다.

음식의 배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앱을 켜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 사람을 은근히 흘겨보는 것도.

(나는 회사에 지각한 거 아니면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1-2초 차이로 누군가가 다다를 수 있는 지각의 운명을 모면하는데 일조해 보자는 알량한 마음으로)


한 번은 주유를 마친 뒤 시동을 켜려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그 사이의 찰나에도, 다급하게 경적을 3-4번 울리는 뒷 차를 보고 이런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정말 무슨 급한 일이길래 저리 마음이 급할까?"


물론 나 또한 바쁜 아침의 출근길에서만큼은 다급한 마음의 행인 1 이기에 이해가 간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급한 상황일 수 도 있다. 빨리빨리의 문화인 배달 서비스 외에도 속도가 곧 돈이고 그리고 그것이 생계와 연관된 다른 산업군들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의미 없이 뭐든 빨리빨리 하려는 행동들을 어느 센가 단지 '관성'적으로 하는 나의 모습 또한 체감하게 되면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뭘 위해서 이렇게 빨리 하려 할까?"


널찍한 사내 식당에 앉아한 번은 사람들이 식사하는 시간의 풍경을 잠자코 지켜보며 밥을 먹었던 때가 있었다. 옆 테이블의 말 없는 한 무리는 8분 간 식판을 '처리'했다. 조금 수다를 이어가는 그 옆 테이블도 15-20분을 넘기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식단인들 회사 밥은 맘 편히 넘어가지 않는 나도, 그 비슷하면서도 무수한 광경을 지켜보며 한마디로 난 현타가 왔다.


그 이후로 급한 일이 없으면, 의식적으로라도 밥을 정말 천천히 먹는 연습을 했다. 밥을 해치우는 느낌이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인 우리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겐

최소한의 나를 아끼는 마음이 도무지 들지가 않아서이다. 점심이 돈까스여도, 맨 밥이어도, 나의 소울푸드여도 식사라는 기본적인 인간의 패턴도 여유 있는 자세로 응하지 않는다면, 훗날 어떤 미래에, 그 넉넉하게 시간을 가졌다고 느껴도 나 자신을 온전히 존중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남해에 내려와 독립서점을 운영 중이신 사장님과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사장님은 남해는 "오너가 왕"인 거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서울과는 다른 템포로 운영되는 점포들. 머리를 자르려면 아침 일찍 여는 이발사 선생님을 따라 기상 시간을 달리하며, 처음엔 적응이 안 되다가도 결국 우리도 그런 각자 개인만의 템포로 살면 되지 않던가 하며 본인도 그 문화에 매료되고 있다고 하셨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프랑스가 떠올리기도 했다.

펍을 제외하고 여차하면 18시 전에 문들을 닫아 난감했던 영국도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처음 접했을 땐 답답하다가도 납득을 하며, 종내 그런 여유를 부러워했던 나의 모습도 함께 기억났다.


나도 남해에 내려와서 책방 사장님의 말을 체감했던 경험을 하게 됐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한 중화요릿집을 방문했다. 사장님은 홀로 주방에서 바쁜 점심 주문과의 사투를 벌이셨다. 주문을 하고 10분이 지났다. 아직 춘장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주방을 슬쩍 보기도 했지만, 이내 기다려보기로 했다.

뒤이어 오신 동네분들은 익숙한 듯 테이블에 미쳐 치워지지 못한 음식들을 자진해 정리하시고 사장님께 주문을 하신다. 그리고 또 10분이 지났다. 총 20분이 지나자 혹시 내 주문이 누락된 것인가? 괜히 조바심이 나서 옆 동네 분들의 동태를 살폈다. 모두 정말 '마음에 점을 찍는다'라는 표현 그대로 편한 자세로 각자 의자에 뉘어 ‘점심'의 시간을 즐기고 계셨다.


20분이 지나니 나도 반쯤 마음을 놓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내가 시킨 이곳의 짜장면의 비주얼을 상상해 보고, 웍 소리만 들려오는 청각에 의존해어 떤 요리일까 추측해 본다. 그러자 나의 점심에 더 애틋을 넘어 애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배도 고팠던지라, 평범한 맛의 짜장면도 소스까지 싹싹 비울 수 있을 것은 기분이란!



사장님은 단무지뿐만 아니라 무생채까지 반찬으로 곁들여주셨다. 그리고 담담히 서비스 군만두를 내어주셨다. 30분의 시간을 감내해 준 내 위장은 뇌를 조정했다.

'소리 질러어~~~~!'

군만두와 찬을 받자마자 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만났구나. 드디어! 나의 본능을 애태운 음식들이여! 하며. 이후에 10분을 또 기다려 짜장면을 받았지만,

그 군만두를 음미하느라 더 이상 시계를 들여다보며 음식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생채를 군만두에 말아 한 입에 넣고 흘린 내 내적 기쁨에 취해

시간을 재는 일을 멈춰버렸다. 오히려 짜장면의 정이 넘치는 고명들을 보며 더욱 그 시간이 이해됐고, 짜장면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를 그렇게 음미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30분을 기다리며 얻은 교훈들과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그 맛있는 짜장면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자극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한 달 살기를 위해 내려오기 전 속세와 더 맹혹하게(?) 단절해 보고자 짝꿍과 친구들과의 연락을 편지 서신으로 대체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생각만 해봤다... 막상 실천해 보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시, 편지 하나로 서로의 안부와 사랑을 교신했던 그 옛날을 떠올렸다. 이중섭 작가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 이남덕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에게 부쳤던 편지들을 보면 편지의 글과 함께 더불어 그 송신 과정에 쌓이는 시간들, 정확히 말하면 '기다림'의 시간들이

두 선생님의 관계를 더 애절하고 소중하게 여겨졌던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보게 된다.




속도를 조금 낮춰 걸어보자. 잡초 더미도 자세히 보면 우리가 몰랐던 꽃들이 숨겨져 있을 수 사진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그 이름도 공작초.


우리에겐 조금 늦어도

그 연유들을 잠시 이해하고 배려할 여유가 필요한 거 같다. 그 정도의 마음의 방도 없다면, 그저 목적 없는 '빨리'의 단어들만 꽉 차 모두가 미쳐버리지 않을까.


잠시 호흡을 고르며 기다리는 그 설렘을 곱씹고 보면

똑같은 일상 속의 사물이나 사람들도 얼마나 다채롭고 소중함이 켜켜이 있는 존재들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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