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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귤씨 Aug 28. 2018

4. 외국에서 '자존심'지키기.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 곳에서 '나'로 살아가기

갤러리 164에서  본 타이포그래피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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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곳에 도착하고 정착하는데 걸린 우여곡절 3주가 지나갔다. 여전히 나는 낯설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따라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역시나 어려움은 등장한다. 그중에 하나가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심지를 찾는 일.


끄적거리는것만큼 잡생각을 잊게해주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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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지나가면서 본거지만'자존심'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사람들은 실제로 자존심이 낮은 이들이라는 글을 봤다. 그렇다, 나는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는걸 두려워한다. 그만큼 아직 심지가 단단하지 않다. 아직 물렁거리는 나라서 자존감을 형성하고 쌓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도 판치는 자존심, 자존감에 관한 서적들. 언어도 문화도 같은 나의 나라에서도 그 정의를 확립하기 어렵고 미묘한 '자존심'을 나는 지킬 수 있을까. 아니 지킨다는 말도 이상했다. 흔들리지 않을까 - 떠나기 전 많은 고민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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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있는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아시안이 적고 중국인 비율도 낮은 곳이라 유학으로 추천한다고 들었지만 논문 작성법과 영어를 배우기 위해 듣는 프리세셔널 코스에는 압도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중국 친구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 한국인들을 한 달 동안 3명 정도 간신히 봤다. 그것도 중국 친구들이 나보고 너무 한국 커뮤니티를 알아보지 않는다고 자신들의 클래스에 있는 한국인들을 강제 소개(?)해줘서 알게 된 친구들. 무튼, 내 클래스에는 나만 한국인이어서  수업 도중이나 쉬는 시간에 중국어로만 이야기하는 중국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영어가 잘 안되니깐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그날따라 몇몇 친구들이 특히나 중국어로만 얘기하면서 웃길래 뭐지- 하고 돌아보니 한국인의 외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였다. 한 친구가 '내가 봤을 때 한국인들은 너무 얼굴이 사각형 같아.'라고 영어로 말해줘서 알았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어이가 없어하던 찰나 '아니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그래.'라고 말해준 그 친구. 당연히 모든 중국인 친구가 그랬던 게 아니라 그 친구가 주도적으로 그런 주제를 중국어로 얘기했었던 거 같은데 다른 친구들이 '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너 무례한 거야.'라고 말해줘서 대화는 끝났다.


맨날 냉동식품만 먹어서 감자채볶음을 내 반찬통에 덜어준 중국인 친구. 좋은 친구들이 더 많기 때문에 세상은 굴러가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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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에 오면 나 개인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었는데, 현실적으로 오니 나의 국적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고 자랑스러워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 또한 나 개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희 나라는 성형을 왜 그렇게 해-라고 물으면서도 누가 봐도 정상적인 체중인데 몸매와 외모가 걱정거리인 이 아이러니한 몇 친구들을 보면서 자존심을 지키는 과정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생전 진지하게 해보았다.

' 자존심이 상하는 일과 사람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 '

나는 몇 주동안 겪은 내 개인과, 국적에 대한 자존심을 유지하는 방법은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계속해서 무례한 말을 하는 친구들에게 결국 ' 미안하지만, 누가 누구를 판단하는 일은 본인을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라는 직설적이면서도 돌려 말하기(아닌가...?)를 시전 해버렸지만, 때로는 그냥 '네가 그렇게 무식하구나. 네가 못 배웠구나.'하고 싸늘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존심 지키기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몇 번 그런 표정을 짓자 그제야 더 이상 평가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부족해서 그런 거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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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교훈을 딱히 영국에 왔다고 깨달은 건 아니다. 충분히 한국에서도 깨달은 포인트가 있었지만, 뭔가 내가 속한 집단이 훼손된다는 건 솔직히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말 같지도 않은 상황과 대화를 무시하고 '나'를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것이 내가 이 곳에서 길게 살아나가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는 점이다.  


stay calm - 이 문장이 왜 한동안 유행했는지 이해됬던 순간들을 곱씹어보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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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나는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이나 인종 차별, 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받는 상처들 때문에 나 자신을 자책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에 지레 겁먹는 것이 아주 빠르게 나를 잃어가고 자존심을 잃어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존심은 항상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부족하면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태도를 의식적으로라도 가지게 되면 어느샌가 그 피드백으로 점점 나아가지는 내가 있고 자신감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내 짧은 인생에서 깨달은 적이 있다. 이 타지에서 나는 여러 번 흔들릴 테지만 그냥 원래 인생은 흔들리는 과정에서 굳건해지고 굳건해졌다는 착각에서도 무너지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똥... 같은 상황에서 미친 척 꽃을 들고 내 코에 내리꽂은 채 그 길을 헤쳐나가다 보면 다른 꽃길이 항상 열려있더라. 그때 또 모든 걸 놓아버리고 행복하게 꽃밭에서 춤을 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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