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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림 May 25. 2020

당신만이 깨어있는 무지의 세상, “눈먼 자들의 도시”

보아도 보지 않는 세상, 당신은?

만약 단 한 사람만이 눈을 뜬 세계라면 과연 무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지금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소리 높여 우리들의 평등을, 존엄성을, 선한 것들을, 이상적인 가치들을 외친다. 평화와 행복,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 지심으로 이상향을 이 땅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비록 이 책은 1995년도에 집필되었지만, 그 시간의 사람들도 2018년도인 지금과 같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며 달려왔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주제 사라마구는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이야기를 던진다.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시각의 상실은 인간 사회의 다양한 면들을 비춰주었다.

 첫 장에서 시작하면서 한 차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면서 시작된다. 오로지 하얀 세계 말고는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하게 된 남자를 다른 한 남자가 선의로 그의 집에 데려다주게 되지만, 낯선 이의 과도한 친절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시각을 잃은 사람의 불안함, 절망, 그가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훨씬 더 먼 곳에서 바라본 진정한 인간들의 사회를 그리고 있었다. 이 사람에서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옮겨 보여주면서 결국 맨 초기의 시력을 잃은 운전자를 진찰하게 된 의사 아내의 시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경로로 ‘접촉’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보기만 해도 전염되는 이 질병은 이상하게도 이 아내만 피해간다. 그로 인해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실명의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비인륜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눈을 뜨고 생생히 지켜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의사의 아내가 질병에 걸리지 않고 시각을 보존한 것은 그녀를 뺀 그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언뜻 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나의 입장에서 그녀는 그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소외당한 인간의 외로움과 그 도시의 마지막 선함을 상징화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이 거대한 이야기에서 홀로 볼 수 있다는 고독함과 볼 수 있기에 지켜야 하는 인간의 품위, 혹은 자존심이었고, 참혹한 이기적 본성뿐만이 인간의 모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이 비정한 책은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부터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모든 사람이 시각장애인인 격리된 시설 속에서도 혼자서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 무기를 사용해서 계급체계를 만들어내고, 폭력을 행하기 시작하며, 차마 생각해내기도 어려운 더러운 짓들을 일삼는다. 남들에게 그들의 얼굴이 보일 리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얼굴이 알려지더라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 자체가 인간이 가장 내려갈 수 있는 바닥,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본성 그대로를 숨김없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지능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것을 착취했고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던 ‘공평, 평화, 정의’ 따위는 그 안에서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것들을 볼 수 있었던 그녀 하나로 인해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었고, 눈이 먼 상태여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깨우치게 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로소 자신들의 눈이 멀었을 때야 깨달은 것이다. 외견만을 보고 가지게 되던 선입견들을, 그것들을 뛰어넘는 인간의 사랑.

 또한, 이 책은 소설이 가진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탁월하게 해낸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큰따옴표를 쓰지 않은 구문들로 독자들이 더 쉽게 더 많은 것을 읽도록 끌어당긴다. 의사 아내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가지만, 모든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주제 사라마구는 완벽한 코스를 설계해둔 듯하다.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기 때문에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궁극적인 인간애를 투명하게 느끼게 한다. 분명히 이 책의 내용은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소설이 분명한데도 아주 깨끗한 물 위에서 그들을 관찰하듯 글자라는 굴절의 번짐 사이로 인물 하나하나를 뜯어볼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불행과 절망에 빠지면 나도 같이 가라앉았고 그들이 환희를 느낄 때 나도 경이로운 기분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흡입력 있게 인간의 감정에 대한 사라마구의 깊은 통찰이 이 책에 있었다.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끝까지 넘기면서, 주제 사라마구가 남긴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과연 그 많은 사람을 눈멀게 만들어서 이 세계의 조물주인 그가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위에서 얘기한 대로, 나는 나름대로 그것들을 선입견과 인간애 정도로 칭했다. 마지막 페이지 이후에도 무엇일까 한참 고민하고 이 책을 옮겨주신 정영목 님의 해설을 보며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각 사람에게 모두 다른 답변이 나오리라고 믿는다. 눈이라는 남을 판단하게 해주는 장치의 부재로 가능했던 인간의 자유인지, 시선에서 벗어나도 지켜야 하는 인간의 선, 혹은 품위, 폭력에 굴하지 않기 위해 협동할 수 있는 인간의 존재, 사람이 위로해줄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이유. 인간이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제법 복잡하고 떠들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제 사라마구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남겼다.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볼 만하다. 나는 제대로 눈을 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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