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4
예쁘게 말하는 데
돈 하나도 안 든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되고,
한 번만 더 고르면 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처음 사랑할 때를 떠올려본다.
그이는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고 했겠지.
현실적으로
그 말을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안다.
그게 진짜 별과 달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그래도 그 말이 좋다.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나를 아낀다는 표현으로
우리는 그 말을 설레는 문장으로 받아들인다.
조금 낯간지러워도 행복하다.
사랑은 그렇게 말로 시작된다.
모든 것은 말에서 시작된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농담을 할지,
무엇을 같이 할지,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라다.
통화로, 카톡으로
딱히 이야기에 주제는 없는데
많은 대화를 한다.
서로를 더 알아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노력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마음을 열고 깊어진다.
처음에는 다 조심한다.
조금이라도 상처 줄까 봐,
괜히 오해 생길까 봐,
말을 고르고,
표정을 고른다.
그게 설렘이다.
관계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
울고 불고 감정소비한 후
시간이 지나
편해졌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어딘가 달라진다.
“연인이니까.”
“아내이니까.”
“남편이니까.”
“친구이니까.”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등에 말로
그 말이 조심을 지운다.
존중을 덜어낸다.
편해졌다는 이유로 표현은 줄어들고,
고마움은 사라지고,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왜 가까워질수록
더 깊어지는 대신 더 무뎌질까.
왜 사랑은
설렘보다 당연함이 먼저 되는 걸까.
고맙다는 말.
고생했다는 말.
괜찮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우리는 그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할까.
아니,
하루에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표현하고 살고 있을까.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마주 보는 얼굴이 있어야 하고,
내 마음을 건넬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중한 말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쉽게 아낀다.
편해지는 순간,
대화는 줄어들고
외로워지거든.
이제는 표정만 봐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왜 알아야 하는 걸까?
표현하는 게 어려운가.
아니면 귀찮은가?
그렇게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놓고
더 외롭게 한다면
사랑하지 말았어야지.
아니면
더 아끼는 쪽의 마음을 이용하는 걸까.
사랑하면 닮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닮고 있는 걸까.
설렘을 닮고 있을까,
아니면
무뎌짐을 닮고 있을까.
나는 닮아가고 있는데,
내가 편해진 그 사람의 태도까지
나는 닮아야 할까.
닮아가다가
문득 그런 순간에 닿으면
낯선 내 모습을 마주한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표현이 줄어든 사람이 되어 있다.
아니면
우리가 말을 멈췄을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