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연분 11
밤이 깊었다.
도성에서 한참 떨어진 숲 깊은 곳.
사람의 눈을 피해 숨겨진
장원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외진 곳의 별장에 불과했으나
문을 넘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넓은 마당.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곳곳에서 검을 맞대고 있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서는
활을 당기는 소리도 이어졌다.
과녁을 꿰뚫는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렸다.
마당을 둘러싼 건물들 안에서도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척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밤이 깊어도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을 내려다보는 누각 위.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인물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흑립을 깊이 눌러쓴 모습.
그 아래로 드리운 면사가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누각 아래에서 훈련하던 사내들조차
그 누각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곳에는 감히 시선을 들 수 없는
존재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사내 하나가 누각 위로 올라왔다.
그의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수하들이 서 있었다.
모두 고개를 깊이 숙였다.
누각 위의 인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챙—
챙—
아래에서는 여전히
검이 부딪히고 있었다.
잠시 후
낮은 음성이 떨어졌다.
사내의 고개가
더 깊이 숙여졌다.
“세자… 그자가 미행을 알아챘습니다.”
누각 위의 공기가
아주 미묘하게 멈추었다.
짧은 물음이었다.
사내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자가 먼저 눈치를 챘습니다.”
“저희를 유인하였습니다.”
잠시 침묵.
밤바람이 누각을 스쳤다.
흑립 아래의 면사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낮은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세자는.”
“…쉽게 미행당할 인물이 아니다.”
누각 위에 선 수하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그자는 궁 밖에 나설 때
호위무사를 거의 두지 않는다.”
잠시 말이 멈추었다.
면사 아래의 시선이
단원들에게 향했다.
“…왜 놓쳤느냐.”
사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인 하나가 있었습니다.”
면사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예.”
“저잣거리에서 나타난 여인이
돌을 던졌습니다.”
잠시 정적.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 여인 때문에 잠시 틈이 생겼고…”
“…그 사이에 세자를 놓쳤습니다.”
누각 위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조용한 물음이 떨어졌다.
“그 여인.”
단원 하나가 대답했다.
“…예.”
“잠시 보았습니다.”
“…가능할 것입니다.”
잠시 정적.
그리고 면사 아래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 향했다.
세자에게 붙잡혔다가
겨우 돌아온 수하였다.
사내의 숨이 거칠게 흔들렸다.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송구합니다.”
잠시 침묵.
누각 위의 인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난간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그 사내 앞으로 걸어갔다.
단원들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누구도 눈을 들지 못했다.
검은 도포 안에서 손이 움직였다.
짧은 금속음이 울렸다.
달빛이 잠시 칼날에 스쳤다.
사내의 숨이 급격히 거칠어졌다.
그러나
퍽—
칼이 내려왔다.
사내의 몸이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누각 아래에서
훈련하던 사내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검이 멈추었다.
활도 멈추었다.
누각 위의 인물은 조용히 검을 털어냈다.
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잠시 후
담뱃대 하나가 들어 올려졌다.
불씨가 붙었다.
희미한 연기가
밤공기 속으로 천천히 퍼졌다.
낮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연기가
면사 아래로 흘러내렸다.
“송구는 필요 없다.”
누각 아래에 선 사내들이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절대적인 복종이 섞여 있었다.
잠시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ㅡ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밤바람이 누각을 스쳤다.
면사가 조용히 흔들렸다.
“준비에 힘을 써라.”
단원들이 동시에 말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잠시 후
사내들의 발소리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누각 위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검은 인물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멀리 도성 쪽을 바라보았다.
면사 너머에서
아주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담배 연기가
밤공기 속으로 흘러갔다.
그 밤.
도성 어딘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장이 말한다.
“그 여인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