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돌

전생 연분 10

by 신비



도성의 저잣거리는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좌판들은 대부분 걷혔고

주막 몇 곳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골목 사이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바람이 골목을 스쳤다.

헐거워진 천막이 조용히 흔들렸다.


검은 도포를 걸친 사내 하나가

저잣거리 끝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세자 이현이었다.


어마마마께서 나가지 말라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다.


궁 밖으로 나오면

숨이 조금은 트였다.


궁 안에서는

발걸음 하나에도 이유가 있어야 했고

말 한마디에도 무게가 따랐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저 한 사내일 뿐이었다.


이현의 걸음이 문득 느려졌다.


바람 사이로 낯선 기척이 섞여 있었다.


발걸음.


숨을 죽인 채 거리를 두고 따라붙는 기척.

하나가 아니었다.


둘.

아니… 셋.


이현의 눈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미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무 일도 모르는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저잣거리 끝.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달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곳이었다.

이현이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골목을 스쳤다.

뒤쪽 발걸음도 잠시 멈췄다.


그 순간.

이현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이었다.


뒤따라오던 사내 하나의 팔을 잡아

단숨에 바닥으로 눌러 꺾었다.


“큭—!”

사내의 숨이 터졌다.


이현이 그대로 등을 눌러

사내를 바닥에 짓눌렀다.


남은 두 사내의 기척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이현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누가 보냈느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이현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말하지 않겠다면—


그 순간.

철컥—

어둠 속에서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울렸다.

달빛이 골목을 스쳤다.


칼이었다.

남은 두 사내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퍽—

둔탁한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칼을 들고 있던 사내의 머리가

옆으로 크게 꺾였다.


사내가 비틀거렸다.

이현의 시선이 골목 입구로 향했다.

돌 하나를 쥔 채 서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 짧은 틈.

이현의 몸이 움직였다.

붙잡고 있던 사내를 밀쳐내며

칼을 든 사내의 손목을 비틀었다.


철컥—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깐의 충돌.


그리고

사내들은 더 싸우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빠르게 흩어져 달아났다.


바람이 골목을 스쳤다.


잠시 후.


골목에는

숨소리만 남았다.


이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돌을 쥔 채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 얼굴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또 그대인가.


연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시선을 거두었다.


낮에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가까이하지 말라.


연서는 손에 들고 있던 돌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인 줄은 모르고

그저 위급해 보여 손을 쓴 것뿐입니다.


잠시 침묵.

연서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스쳤다.

연서는 돌아섰다.


그리고 더 머물지 않고

골목을 벗어나

저잣거리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던 연서는

걸음을 옮기며 문득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그 무례한 자를 또 마주치게 된 것인지.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이영이 먼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밤이 늦었다.

이리 늦게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연서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잣거리에서

그자와 마주친 일을 떠올렸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영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연서는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달빛 아래에서 마주친 그 사내의 눈빛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이현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조용히 골목을 지나갔다.


잠시 후

이현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궁의 밤은 저잣거리와는 전혀 달랐다.


조용했고

차가웠으며 숨조차 조심스러웠다.

이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문득

저잣거리 골목이 떠올랐다.


바람.

달빛.


그리고

돌을 던지던 한 여인의 모습.


미행을 붙인 자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어느새 연서를 향해 있었다.


참으로 무례한 여인이었다.


연서의 말끝에서,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이현의 마음을 스쳤다.


처음 만났을 때도.

오늘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얼굴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왜인지

이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