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꿈마차 3
여전히 밤이 조금 쌀쌀합니다.
신비는 달콤한 딸기라떼를 한 모금 마십니다.
달콤한 향이
조용한 밤공기 속에 천천히 퍼집니다.
그리고
오늘도 신비는 마음 항아리 앞에 섭니다.
항아리 속에는 여러 빛깔의 보석들이 가만히 숨 쉬듯 빛나고 있습니다.
신비는 잠시 그 보석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넣습니다.
오늘 선택된 보석은
아주 잔잔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연한 하늘빛.
그리움의 보석입니다.
신비는 그 보석을 연료함에 넣습니다.
마차의 등불이 천천히 밝혀집니다.
또각
또각
말굽 소리가 조용한 밤길을 두드립니다.
꿈마차는
마음 정류소를 향해 천천히 달립니다.
정류장에는 한 노인이 서 있습니다.
신비가 말합니다.
“꿈마차에 탑승하시겠습니까.”
노인은
하늘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 천천히 마차에 올라탑니다.
마차 안에는 따뜻한 등불이 켜져 있습니다.
신비가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아무 말이나 하셔도 됩니다.”
노인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냅니다.
“요즘은 하루동안 사람과 말을 하는 시간이
거의 없소.”
노인은 조용히 웃습니다.
“예전에는 집이 참 시끄러웠소.”
아이들 웃음소리
밥 먹는 소리
TV 소리
문 여닫는 소리까지
모두
집 안을 가득 채웠소.
“그때는 조용한 시간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바라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두 잔의 컵을 꺼내오.”
잠시 멈춥니다.
“믹스커피 맥심을 찾던 집사람. 아직도 그게 버릇이 남아서.”
노인은 작게 웃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를 조용히 넣어두오.”
“밥을 먹을 때도 마주 보던 자리가 비어 있소.”
“그래서 음식을 많이 하지 않소.”
“남으니까.”
“TV를 켜놓소.”
“소리가 없으면 집이 너무 적막해서.”
“누가 있는 것 같아서 틀어놓소.”
노인은
창밖을 바라봅니다.
“그럴 때는
조금..
내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드오.”
“자식들은 잘 지내오.”
노인의 목소리는 조용합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지.”
“그래서 자주 보지 못해도 괜찮소.”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하오.”
“가끔은 전화가 오지.”
“아버지, 잘 지내세요.”
“바빠서 자주 못 가 죄송하다고요.”
노인은 작게 웃습니다.
“그래도 그 한마디면 괜찮소.”
“전화가 끊기고 나면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지.”
“괜히
더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아서.”
“보고 싶다는 말은 잘 못 하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오겠지 하고…”
노인은 조용히 웃습니다.
“부모라는 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오.”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엽니다.
“마누래이가 그립소.”
잠시 숨을 고릅니다.
“보고 싶소.”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이 눈을 감자고 했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립니다.
“매일 손잡고 산책하던 그 길도…”
“애정 표현을 하면
영감탱이가 노망 났냐며 미쳤냐고 하던 집사람도…”
노인은 작게 웃습니다.
“꽃을 보며
당신보다 하나도 안 이쁘오. 하면…”
“여전히
볼이 발그레해지던 집사람인데…”
잠시 말이 멈춥니다.
“점점 심해지니
자식들은 요양원에 맡기자 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소.”
“그렇게도 살아생전…”
“자식들은 좋은 거 많이 먹는다며
우리 둘뿐이다 라고 하며 늘 챙겨주던 사람이었소.”
노인은 고개를 숙입니다.
노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또각
또각
말굽 소리만 조용히 흐릅니다.
“사람이…”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엽니다.
“이렇게까지
조용해질 줄은 몰랐소.”
“둘이 있을 때는 몰랐소.”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노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집니다.
“그 사람이 가버리고 나니…”
“집이 아니라 빈 감옥 같소.”
“혼자 밥 먹는 게
제일 힘들더이다…”
“그래서… 요즘은 잠이 잘 안 옵니다.”
“불을 끄면… 아무도 없는 게 더 또렷해져서요.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그래도…”
노인은 작게 웃습니다.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소.”
“같이 살아온 시간도 돌본 시간도…”
“다 내가 선택한 삶이었으니까…”
노인은 고개를 살짝 듭니다.
“그래서
지금이 조금 외로워도…”
“괜찮소.”
“그 사람
한 번 더 손 잡아본 거로 충분하오.”
노인은 조용히 웃습니다.
“사실은…”
잠시 말을 멈춥니다.
“…혼자 남는 게 이렇게 무서운 줄은 몰랐소.”
“둘이 있을 땐
먼저 가는 게 더 무서울 줄 알았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집니다.
“이렇게 남겨지는 게 더 무섭더이다.”
“그 사람이 나를 두고 간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 없이 남은 거라서.”
노인의 눈가가 조용히 젖어듭니다.
“손자 손녀들도 많이 컸다오.”
노인은 작게 웃습니다.
“꼬물거리던 아이가
이제는 군대를 간다 하오…”
“시간이 참… 빠르지 않소.”
잠시 말이 멈춥니다.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닮았으니 인물들은 훌륭하다오.”
핸드폰 화면에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놈은
얼마나 컸을지…”
“많이 이뻐졌겠지…”
노인의 입가에 낮은 웃음이 맺힙니다.
“가끔은 영상통화를 한다오.”
“아버지 아픈데 없어요?”
노인은 조용히 대답합니다.
“없다고 말하오.”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저 혼자 눈물이 늘었소.”
노인의 시선이 멀어집니다.
“어제는 이씨…”
“그제는 정씨…”
“하나 둘
다 떠나가는 걸 보면…”
“참…
두렵구려.”
노인은 천천히 숨을 내쉽니다.
“마누래이가…”
“…데리러 와주면 좋겠는데.”
마차 안이
깊게 조용해집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신비가
조용히 입을 엽니다.
“어르신 …”
“지금 이 마음은…”
잠시 말을 고릅니다.
“좋았던 기억 속에 계시다가
다시 혼자 있는 현실로 돌아오시는
그 사이를 계속 오가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더 외롭게 느껴지시는 겁니다.”
“어르신…”
“그리움이 이렇게 깊다는 건 그만큼 많이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남아 있어도 괜찮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르신께서 느끼시는 이 마음은…”
“외로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그리움까지 놓으라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을
잠시 쉬게 해주셔도 됩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보다
정말 바쁘게 살아서 연락을 자주 못하고
찾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 시간들이
자식들에게도 후회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한 번만 먼저 전화를 걸어보셔도 좋습니다.”
“별말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날씨가 좋아서…”
“밥은 먹었니…”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짐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표현하셔도 됩니다.”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주 큰 행복입니다.”
“아내분과 다니시던 산책도 다시 걸어보시고
함께 가시던 시장도 천천히 다시 다녀보십시오.”
“처음에는 더 외롭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는 여전히 함께 걸었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던 시간이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다시 걷는 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 아니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짧은 인사라도
자연스럽게 나눠보십시오.”
“그렇게 살아가시다 보면 곱게 웃으시던 아내분께서 당신 참 잘 살았소…”
“그렇게 말씀하시며 마중 나오는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언제든
말이하고 싶으시다면…”
“다시 오십시오.”
노인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옵니다.
손에 쥐고 있던 힘이 조금씩 풀립니다.
노인은 고개를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마차는 더 천천히 밤길을 달립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마차가 천천히 멈춥니다.
노인은 눈을 뜹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마차에서 내려
잠시 멈춰 신비를 바라봅니다.
노인은 작게 웃습니다.
“나는…”
“오늘 외롭지 않았소.”
“…오랜만이었소.”
노인은 주머니에서 사탕 세 개를 꺼냅니다.
“이 사탕은 마누래이가 좋아하던 사탕이오.”
잠시 멈춥니다.
“그래서 하나는 그 사람 거고 하나는 내 몫이었소.”
노인은 사탕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 하나는 손주 녀석 주려고 남겨둔 거였는데 오늘은 다 드려도 괜찮을 것 같소.”
“ 고맙소.”
노인은 천천히 밤길로 걸어갑니다.
또각
또각
꿈마차는
오늘도 고요한 밤길을 천천히 달립니다.
"꿈마차는 잠들지 못한 사람을 태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