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의 검은 보석

달리는 꿈마차 8

by 신비

오늘은 유난히 고요한 밤입니다.
신비는 따뜻한 메밀차를 한 모금 마십니다.


고소한 향이 입안에 길게 머물다가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잔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마음 항아리 앞에 섭니다.


달빛은 흐릿하게 내려앉아 있고, 항아리 속 보석들은 숨을 죽인 채 빛을 눌러 담고 있습니다.


신비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손을 넣습니다.


오늘 선택된 보석은 겉이 유난히 번들거립니다.
빛을 과하게 머금은 듯 반짝이지만,
안쪽은 검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중심은 비어 있고, 겉만 계속해서 빛을 끌어당기려는 보석입니다.

붙잡기 위해 더 크게 흔들리고,

더 많이 드러내야 하는 감정.
그 보석은 의존의 검은 보석입니다.


신비는 그 보석을 연료함에 넣습니다.


등불이 잠시 흔들리다가 불안정하게 켜집니다.


또각, 또각.


말굽 소리가 밤을 가릅니다.


마음 정류장에는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는 가만히 서 있지 못합니다.

시선이 계속 흔들리고, 누군가를 찾듯 주변을 살핍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길 기다리는 눈입니다.


꿈마차에 탑승하시겠습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요.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숨도 고르지 않고 말을 꺼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친척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나서 집안이 기울었고, 그 사고에서도 저만 살아남았다고.


저를 맡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설명해야 했습니다.

치료도 받고, 도움도 받고 그러다 알게 됐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준다는 걸,
불쌍해 보이면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저는 그걸 선택했습니다.


저는 타인이 저를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를 봅니다.


자해도 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자해도 있었고,
그냥 짜증나서 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죽고 싶어서도 있구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저를 놓지 않습니다.

도와주고, 들어주고, 울어주고,
교회목사님도, 교인들도, 센터선생님도, 지인들도
모두 다 들어줘요.



그래서 저는 그걸 또 선택했습니다.”


잠깐 웃습니다.


“편하니까요.”

처음에는 그저 힘듦이었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지 않게 되면 더 힘들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더 강하게, 더 과하게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의 따라 연기와 이용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저의 사정을 이해하고 만난 여자친구가
저를 사랑해 주고 보듬어줬어요.


그렇게 제 얘기를 들어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그러더군요. 이제 도움만 받을게 아니라 스스로 일도 하고 살아보라고.


일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편해졌는데,

또 죽고 싶게 만드네.라고 말했죠.


그러니 여자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끝마다 죽고 싶다,
힘들다 핑계를 댈 거면 차라리 죽고 싶으면 죽으라고, 어차피 죽지도 못할 거면서.
지겹다고 하면서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결국은 살게 되더라구요.

맞아요. 죽을 거였으면 죽었겠죠.


근데 지금 말하면서도
그녀에게 기분이 너무 나쁩니다.



계속 들어줬으면 계속 들어줘야 하고,
이해하려 했으면 이해했어야 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들어주질 말던지.



그 여자 때문에 또 죽고 싶습니다.


헤어졌지만 저는 만나는 사람에게 얘기합니다.
저한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헤어지길 잘한 것 같다고.”


손을 꽉 쥡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그냥 의존하면서 살아온 겁니다. 부모가 없어서, 혼자라서 우울해서 저를 불쌍하게 봐주길 바랐던 겁니다.”



얼마 전 치료도 다녀왔습니다.

근데요. 그분들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꽤 쉬워요.


그냥 무기력하다, 힘들다, 움직이기 힘들다.
안 좋은 것들만 체크하면 제가 위험한 사람이 되더라구요.”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합니다.


“흠, 마주님은 제가 어때 보이나요?”


마차 안이 깊게 가라앉습니다.


신비는 그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엽니다.


“네. 안타깝네요.
불쌍합니다. 힘드셨겠네요.”


짧은 정적.



“이제 만족하십니까.”


마차 안 공기가 순간 멈춥니다.
신비는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말입니다.
당신이 계속 만들어낸 상황 끝에
겨우 받아낸 말입니다.


남자는 알 수 없는 표정입니다.


“정말 그렇게만 살고 싶습니까?
그 방식 말고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까?”


정적이 흐른 뒤 신비는 부드럽게 이어갑니다.


처음에는 들어줄 수 있습니다.
누구든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도 반복되면 질리고,

결국은 듣기 싫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힘든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사람을 떠납니다.



정적.


그리고 정말로 우울한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분이 많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꺼내 보여줄 만큼 삶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를 들어도 그 누구도 그 상처를 없애주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눈이 흔들립니다.


당신은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
붙잡으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크게 말하고, 더 아픈 척하고,
더 극단적으로 표현합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신은 보호막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처는 가려야 할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내세웁니다.

보여주고, 드러내고, 붙잡기 위해서.


그 순간,
그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닙니다.
사람을 붙잡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사람을 남게 하지 않습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은 떠나게 됩니다.



마차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상처는 당신을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당신의 방식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잠시 멈춥니다.



당신은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살아내려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극복하지 않았고,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버티지 않기로 선택한 겁니다.



편한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 방법을 계속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상처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사용해 온 사람입니다.


숨이 멎은 듯 고요해집니다.

신비는 낮게 이어갑니다.



죽고 싶다는 말은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동생을 잃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을 앓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슬픔과 고통의 크기는 절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의 무게가 있습니다.


내가 더 아프다, 내가 더 힘들다.
그 말은 고통이 아니라 억지입니다.


삶을 말로 가볍게 다루는 것,
무엇을 막론하고 그것이 저는 가장 싫습니다.



잠시, 아주 조용한 정적이 흐릅니다.


당신에게는 습관처럼,
편안하려고 수없이 반복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이.


하지만
제발 하루만 더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 하루는 욕심일까요,
아니면 간절한 바람일까요.



마차 안이 숨을 죽입니다.



제일 위험한 건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픈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치료의 손길마저 관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픔을 숨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받기 위해,
자해까지 해서라도 사람을 붙잡으려 한다면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크게 옵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순간,
그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긴 정적.





하지만 당신이 틀렸다는 것이
당신이 끝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지,
당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정적.


당신은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건 이미 충분히 버텨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그 버티는 방법이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바꿀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면 됩니다.
상처로 붙잡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서는 방법을.


잠시 멈춥니다.



사람을 붙잡지 않아도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당신은
관심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로 살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마주님…
저 불쌍해 보이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신비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 친구 할까요.


좋아요.



이제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기.


남자는 기분이 괜찮은지 미소를 짓습니다.


마차가 천천히 멈춥니다.
이번에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습니다.


변명도 없습니다.
그저 손을 흔들며 내려갑니다.


신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합니다.



아픔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이용되는 순간 변질됩니다.


치유를 구하지 않는 고통은,
반복을 선택한 고통입니다.


또각, 또각.



꿈마차는
아무 말 없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집니다.



“꿈마차는 잠들지 못한 사람들을 태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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