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연분1
허연서는 사랑받는 아이였다.
그 사실은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스스로 깨달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하루하루를 살아오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현조판서의 집은 늘 단정했다.
기둥 하나 삐뚤지 않았고, 마당의 흙은 언제나 고르게 다져져 있었다.
집안사람들 또한 흐트러짐이 없었다.
말은 짧았고,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그 중심에, 현조판서가 있었다.
“연서야.”
아버지가 이름을 부르면,
연서는 반드시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는 엄격했으나, 냉정하지는 않았다.
“아버님.”
연서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조차 그 눈빛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이냐.”
현조판서는 연서의 손에 쥐어진 종이를 가리켰다. 먹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꽃도 아니고, 새도 아니었다.
선은 많았고, 형태는 자유로웠다.
“연서가 그린 것이옵니다.”
“왜 서책에다 그렸느냐.”
연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빈 종이가 없었사옵니다.”
현조판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에는 분명 꾸짖음이 담겨 있었다.
“다음부터는—”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먼저 물어보거라.”
그렇게 말하며, 현조판서는 연서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찢지 않았다. 구겨 버리지도 않았다. 조심스럽게 접어, 책상 옆에 두었다.
“아버님?”
“잘못은 잘못이다.”
현조판서는 분명히 말했다.
“허나, 네가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까지 잘못은 아니다.”
연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가슴이 괜히 따뜻해졌다.
“대신.”
현조판서는 연서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같은 일을 하면, 그땐 회초리를 들겠다.”
연서는 씩 웃었다.
“그럼, 다음엔 꼭 여쭙겠사옵니다.”
그 대답에, 현조판서는 고개를 돌렸다.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풀어진 것을,
연서만이 보았다.
집안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현조판서였고,
그 현조판서를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허연서라는 것을.
“아가씨가 한 번만 말씀하시면, 대감께서도 달라지시지요.”
몸종 단이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연서는 그 말이 조금 부끄러워, 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버님은 늘 그러셨어.”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현조판서는 엄격했으나,
딸에게만큼은 언제나 한 박자 느렸다.
꾸짖을 때도, 벌을 내릴 때도,
항상 먼저 이유를 들었다.
그렇게 연서는 자랐다.
혼나면서도 사랑받는 법을,
사랑받으면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집에,
머지않아 또 다른 아이가 들어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