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2
사람들은 왜 나와 같지 않을까.
나는 말을 고르는 편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걸러서 말한다.
상대가 어떻게 들을지,
괜히 상처가 되지 않을지 먼저 계산한다.
그게 예의라고 배웠고,
그게 배려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생각 없이 말한다.
“그게 뭐 그렇게 예민해.”
“그 정도는 다들 웃고 넘기잖아.”
나는 그 말이 가볍지 않은데,
그들은 가볍게 웃는다.
그리고 나는
그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웃는다.
분명 속으로는 화가 나 있는데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기분이 상했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넘길 것인가.
이상하게도
나는 거의 항상 두 번째를 고른다.
관계가 끊어질까 봐.
괜히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될까 봐.
나만 예민해 보일까 봐.
나는 그들이 무심했던 순간에도
그들의 의도를 대신 해석해 준다.
‘악의는 없었겠지.’
‘그냥 습관이겠지.’
‘내가 좀 예민했나.’
나는 타인의 말을 정리해 주면서
내 감정을 지운다.
그게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했다.
화를 바로 드러내는 사람보다
웃으며 넘기는 사람이 더 단단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단단했던 게 아니라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불편함을 안으로 밀어 넣는 데.
집에 돌아오면 그때서야 얼굴이 굳는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제야 생각한다.
왜 나는
그 자리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상대의 기분은 존중하면서
내 기분은 설명하지 못했을까.
나는 늘 이어져야 하는 관계라면
조금쯤은 참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나를 줄이는 일이 반복되면
남는 나는 얼마나 될까.
나는 관계를 지키는 사람일까.
아니면
나를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사람일까.
처음에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가 계속 들어주니까
더 생각 없이 말하는 걸까.
화를 표현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불편함을 말하지 않는 사람.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사람.
언제나 이해하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 얼굴이 너무 익숙해져서
진짜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 나 있는데 웃고 있었다.
그건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그리고 습관은
결국 성격이 된다.
나는 원래 참는 사람일까.
아니면
참는 법을 오래 연습해 온 사람일까.
어쩌면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예민해 보이지 않으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굳이 단어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상처가 될지,
기분이 나쁠지,
한 번쯤은 멈춰야 할 말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된 걸까.
나는 늘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내 표정을 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