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꿈마차 13
오늘은 유난히 조용한 밤입니다.
바람도 없고 흔들리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무겁습니다.
신비는 따뜻한 차를 입에 대지 않습니다.
온기는 손끝에 닿는데
마음까지 오지는 않습니다.
신비는 천천히 마음 항아리 앞에 섭니다.
오늘 보석은 투명합니다.
빛이 없는 것은 아닌데 빛이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쪽이 텅 비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잃고 난 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끝내 다 채워지지 않는 자리처럼
고요하게 비어 있습니다.
신비는 조심스럽게 손을 넣습니다.
손끝에 닿는 순간 말하지 못한 이름 하나가
조용히 올라옵니다.
너무 많이 불러서 이제는 입술보다 먼저
가슴이 먼저 아는 이름입니다.
그 보석은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이름의 보석입니다.
또각, 또각.
오늘 마음 정류소에는
한 중년의 여인이 서 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작게. 흐느끼고 있습니다.
소리를 참으려는 사람의 어깨는 유난히 잘게 흔들립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습니다.
과일과 간단한 재료들이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오늘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 안에 가만히 담겨 있습니다.
신비는 말합니다
“꿈마차에 탑승하시겠습니까.”
여인은 젖은 눈으로 신비를 한 번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네.”
마차에 올라
자리에 앉지만 등을 기대지 못합니다.
“이곳에서는 무슨 말이라도 다하셔도 됩니다.”
“…죄송해요 자꾸 눈물이…”
여인은 겨우 숨을 고르고 입을 엽니다.
“… 아들을 사고로…”
말이 끊깁니다.
입술이 떨리고 턱 끝이 흔들립니다.
“…보냈어요…”
마차 안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며느리도 있고 가정도 있었는데…”
“…잘 살고 있었는데…”
그 말 끝에 울음이 엉깁니다.
“그냥 한순간에 나쁜 사람 때문에..”
숨이 툭, 하고 꺾입니다.
“…그날 전화가 왔었는데 못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걸었는데…”
컬러링만 계속 나오더라고요.
그 말에 여인의 눈이 다시 젖습니다.
“너를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크게 울어봐도 떠난 네게 들리는 것도 아닌데 흘러 나오는 컬러링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정적.
그녀는 고개를 더 깊이 숙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가끔 괜히 그 애 이름이 먼저 나와요…”
“…이제는 부를 이유도…”
“…부를 곳도 없는데..”
그 말은 누구에게 설명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없다는 걸 아는데도ㅜ자꾸만 이름이 먼저 나오는 몸의 기억 같은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자리는 그대로에요.”
“제사도 계속 지내요.”
“누가 뭐라 해도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주고 싶어서…”
손이 떨립니다.
“…근데 단 한 번도 꿈에 안 나와요…”
여인의 얼굴이 무너집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은
꿈에라도 와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녀는 그조차 받지 못한 사람처럼
울음을 삼킵니다.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요…”
“…얘기…”
“…한 번만…”
마차 안이 깊게 가라앉습니다.
신비는 그녀를 오래 바라봅니다.
그리고 말없이 다가갑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엄마.”
여인의 몸이 굳습니다.
“…엄마 나야.”
그 말 하나에 숨이 무너집니다.
“…미안해…”
“…너무 갑자기 가버려서…”
“…엄마 많이 울었지…”
“…알아…”
“…그래도…”
“…나 너무 미워하지 마…”
“…그날은…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엄마 가해자 너무 미워하지 마
그 사람도 평생 그날에서 못 벗어나.
그날 이후로 그 사람 인생도 멈춰버렸을 거야.
엄마 그 미움까지 안고 있으면 엄마가 더 아파…”
여인의 눈물이 다시 흐릅니다.
“…엄마. 엄마가 그렇게 울면 나도 편히 못 지내…”
“…엄마가 밥 안 먹으면 나는 더 걱정돼…”
“…엄마가 계속 울면 나는 못 떠나…”
“…엄마 나는 사라진 게 아니야 늘 엄마 옆에 있어…”
“…엄마 아들이라서 행복했어…”
“…다시 태어나면 아주 오래 엄마 아들로 있고 싶어…”
“…엄마는 웃는 모습이 예뻐,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덜 아팠으면 해. 항상 난 엄마 곁에 있어.”
“…아주 많이 사랑해. 엄마.”
정적.
여인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아들…”
“…나도…”
“…사랑해…”
“…많이…”
신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줍니다.
오래.
아주 오래.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돌아섭니다.
여전히 아픕니다.
하지만 조금 덜 혼자입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신비는 조용히 말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시간은 잊는 시간이 아니라
견디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은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채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자식은 떠났어도 엄마의 몸은 그 이름을 먼저 기억합니다. 그래서 대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이름부터 부르게 됩니다.
그건 못 잊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죠.
엄마는 잊지 못해서 아픈 게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고 있어서 아픈 겁니다.
그래서 그 아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품고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은 설명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니라, 끝내 다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에요.
그래서 더 외롭고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남들은 시간이 약이라 말하지만 어떤 이별은
시간으로 낫지 않습니다.
그저 울면서도 살아내게 될 뿐입니다.
그게 남겨진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됩니다.
대답하지 않는 이름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또각, 또각.
꿈마차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집니다.
“꿈마차는 잠들지 못한 사람들을 태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