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3, 또는 대입합격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by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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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만 원이던 학원비가 겨울 특강으로 옷을 갈아입고 교재비 포함해서 거의 백만 원에 가까워지자 막내 조카와 나는 예비 고3 겨울방학을 학교 기숙사에서 보내기로 했다. 수학은 34만 원 하는 이투스 신승범 인강을 신청하고 물리와 생명과학은 EBS 강의로, 국어와 영어는 강남인강(5만 원)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막내 조카는 친구가 기벡과 생명, 물리를 들어도 좋다며 아이디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어찌 보면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것을 빌려주다니... 그래도 불안한 난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나 : 조카에 대해서 엄마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예비고3이란다.
집이 가난해서 학원은 못 다니지. 고2 겨울방학 너는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냈니? 가볍게 터치해줄 수 있겠니?


성진 : 음 저는 겨울 방학때 학교를 매일 갔습니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이후로는 그 날 컨디션에 따라서 학교에서 계속 하든지 집 가서 조금 쉬다가 하든지 했던 것 같네요.
국어는 모자라다고 생각해서 겨울 방학때부터 꾸준히 기출 문제를 풀었고, 수학이나 영어도 기출 문제 중심으로 수능 시간표 맞추어서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겨울 방학을 포함해 1년 내내요. 수능 때 볼 사회탐구 두 과목 중에서 한 과목은 이미 정했던 터라 인터넷 강의로 방학때 보충했습니다. 나머지 한 과목은 학기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조카는 이과생이라 저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유명 인터넷 강사의 강의를 많이 들을텐데 기회가 된다면 문제집만 빌려서 복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꼭 풀어봐야 하는 문제는 최근 5~7개년 기출 문제와 EBS 문제집이 전부인데,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풀 문제가 없어질 때가 있어요. 반복도 한계가 올 때 유명 강사들이 자체 제작한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고3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면 정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요!


나 : 수능시간표 맞춰서 공부를 했다니 가슴이 뜨거워지는구나. 네 충고 고맙다. 다음엔 슬럼프 시기와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알려주면 고맙겠다.


성진 : 저는 고등학교 때의 기억 중에 고등학교 3학년의 기억이 제일 좋았던 만큼 특별히 슬럼프라고 느꼈던 때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보통 슬럼프라고 말한다면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그리고 원서를 쓰는 기간 등 학교가 어수선할 때 제일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하는데 1년 언제 어느 때나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면서 공부를 하면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같은 마음가짐, 들뜨지도 가라 앉지도 않으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게 제일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장 힘들 때일 수도 있으나, 본인이 정말 열망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가장 즐거울 수 있을 때인 것 같습니다. 조카에게도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즐거웠던 때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 역시 바둑으로 심신을 다진 자 답구나. 너의 성실한 대화가 큰 힘이 되었다.
ありがとう。너의 답변이 가슴에 와닿았나 보다. 조카에게서 즉시 답이 오네♡

좋은 말씀 감사하네요! 라고...


성진 :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저도 고맙네요 !
본인만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ㅎ


훌륭한 청년과의 대화로 나는 자신이 돈이 없어서 학원을 못 다니게 한다는 자책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 간절히 원하면 길이 보인다. 어두워서 길이 안 보이는 캄캄한 현실을 두려워 말고 먼저 걷고 있는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다. 그들이 걸어가는 빛을 따라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면 되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다음은 대입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선배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1.

네 앞으로 적금을 하나 들고 싶다. 1년 만기. 자유적금. 매달 만 원씩 입금해서 내년 이맘 때 찾는걸로. 그 돈을 쌈지 돈으로 대학 붙으면 누나처럼 겨울방학 때 운전면허를 따자. 해외 나가서 국제운전면허증 있으면 알바하기도 좋고 차 랜탈해서 여행하기도 좋지. 운전학원 모자라는 돈은 너랑 나랑 한 달 알바로ㅋ


#2.

위의 문자는 조카에게 보낸 톡이야..

겨울방학 한달 알바해서 면허증부터 따두렴. 고모랑 영화 한번 봐야지. 영화 함께 본 후 토론도 하고ㅋ


#3.

내가 대학을 세 번 다닌 이야기해줬던가?
다음에 만나면 자세하게 들려줄게. 성적이랑 직장 때문에 선택한 대학생활이 얼마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는지. 다음은 비장한 각오로 일본에 건너가 죽도록 알바하며 꿈을 찾으려 선택한 대학생활이 얼마나 멋졌는지. 그리고 올해 방통대 중어중문과 졸업여행으로 칭다오를 여행하면서 서툰 중국어로 떠듬떠듬 숙소와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얼마나 신선한 생의 자극을 받았는지를...
지금 네가 힘든 것만큼 나도 그런 과정을 통과해오면서 말야, 이런 생각을 해. 대충 타협하고 들어갔던 대학생활이 재미있었다면 지금쯤 밤새워 글 같은 건 쓰지도 않을 것 같다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 첫 대학생활이 있었기에 나는 내가 무엇을 죽도록 원하는지 알 수 있었고 도망치지 않고 꿈을 꿀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하고. 지금 힘들겠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즈 리턴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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