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아이스라떼와 같은 이름, 고모엄마

by 이은주


고모엄마, 정확히는 고모할머니엄마입니다.

녹차아이스라떼처럼 고모엄마라는 이름이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올해 조카손자는 다섯 살이 되었지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놀이터로 동물원으로 어린이도서관으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달린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큰조카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되었지요. 그도 그런 것이 어려서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큰조카는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를 친구들과의 교재로 메우려 했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지만, 지금은 혼자 아이의 장래를 책임져야 하니까 도망치고 싶었을 겁니다. 어쩌면 아이 때문에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제가, 큰조카가 엄마가 되는 연습을 하는 동안,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낮동안 손자를 돌보면서 엄마를 하기로 했지요. 엄마밖에 말하지 못할 때 손자는 증조할머니와 고모할머니인 저를 엄마라고 불렀으나 크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평생 '엄마'라고 불러야 할 총량이 있다면 엄마와 애착관계가 형성될 시기에 실컷 엄마엄마를 부르게 내버려 두자고요..

그러므로 저는 고모엄마입니다. 손자와 보내는 날들은 평범한 엄마들처럼 매순간 경이롭고 감탄할 일들로 가득하지요. 그리고 아이는 늘 저에게 숙제를 내줍니다. 며칠 전 이야기에요.


월드컵경기장에 갔을 때였죠. 초승달과 별이 떠있었는데
와 별이다 해서
응 별님이랑 달님이 떠있네 했더니
달이 아닌 거 같은데.. 손자가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둥근 달만 달이고 반달, 초승달은 별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저는 아직도 초승달과 반달, 둥근 달이 모두 같은 달이라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려구요.

그러던 중 그림책 큐레이터 제님씨의 '포근하게 그림책처럼'에서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를 알게 되었고 에릭 칼의 작품 중에 '아빠 달님을 따 주세요'라는 책을 알게 되었죠.

다음주에는 손자의 손을 잡고 어린이도서관에서 에릭 칼의 그림책을 빌려올까 합니다.


아빠 없이 자라는 손자가 사랑받지 못하고 크는 게 아닐까 늘 조바심을 냈지만, 그런 마음이 전해졌느지 '어디가 제일 예뻐?'라고 제가 묻자 손자는 벌떡 일어나서 포동포동한 검지손가락으로 여기, 여기, 여기 하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안 보이는 등은 펭귄의 짧은 지느러미 같은 손가락으로 어깨 위로 올리며 깡총깡총 뛰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죠.. 그때 저는 감동했어요.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걸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하고.


다음 에피소드는 육아문제로(대개 엄마와 저는 손자를 서로 잘 안다는듯 행동할 때가 있지요. 낮잠을 지금 재우느냐 마느냐, 밥 대신 간식을 먹여도 되느냐 안 되느냐 설핏 잠든 아이를 깨워서 이를 닦여야 하느가 마는가로 팽팽하게 대립을 합니다) 제가 엄마에게 토라져 있을 때였습니다. 우린 길을 걷고 있었어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께서 뒤에서 걸어오셨죠. 우리들보다 늦게 걸어오시는 할머니를 신경쓰며 손자가 말합니다.

할머니는 예뻐서 누가 데려가면 안 되니까 기다려야지~

그리고는 할머니께 달려갑니다.

육아문제로 화가 났던 저는 달달한 차를 마신 것처럼 마음이 녹았지요.


이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월급을 살짝 속여서 매달 40만 원씩 용돈으로 써왔던 큰조카와 할머니가 다툰 다음 날이었어요. 할머니는 큰소리가 나서 손자가 불안했겠다 싶어 이렇게 말했지요.

할머니가 화내서 미안해. 너한테 화난 게 아니야.. 하고

그러자 손자가 말합니다.

-괜찮아. 내가 더 미안하지..

괜찮아, 내가 더 미안하지 라는 말을 듣고 할머니는 손자를 꼭 안아주었답니다. 그의 나이 5살, 만으로 3살. 고작 49개월 산 아이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죠.


마지막으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전할까 합니다.

강추위가 여러 날 계속 되고 있었어요. 손자와 저는 장을 보러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손자가 좋아하는 킥보드를 타고서요.

그때 배웅나오신 할머니께 손자는 외쳤죠.

추운데 들어가세요~ 하고


요즘 자아가 발달되는지 유난히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어요. 고집부릴 땐 고집을 꺾어주어야 하나 그냥 내버려둬서 자신이 행동을 바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망설일 때가 있지요. 일관성 있게 해야 할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가 있거든요. 시간에 쫓겨서 대부분 왜 고집을 부리게 되었는지 탐색하기 보다는 화를 낼 때가 자주 있어요. 손자를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주고 사랑해주어야지. 녹차아이스라떼 고모엄마는 다짐을 하기 위해 손자의 에피소드를 여기 정리해 둡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하면 찾아서 읽고 다시 마음을 다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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