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니잖아

by 이은주

고모는 엄마가 아니잖아.

어제 잠자리에서 손자가 말했다.

흠 좀 빠른데. 빨라도 너무 빠르다.
막내 조카는 중3 때
'다른 엄마들은 달라요' 하고 말했었다.
큰 조카는 느렸다. 조용히 자라다가 고2 겨울방학 때 집을 나가서 찾으러 다녔다.

손자는 6살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여 말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 반응이 달라졌다.
막내 조카 때는 '다른 엄마는 안 그래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첫 번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 어떻게 하니? 네가 어른이 되어서 훌륭해지면 질수록 키워줘서 고마워요 라고 인사하기보다 다른 엄마는 안 그래요 하고 한 말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워질 텐데..
두 번째 든 생각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네. 사춘기를 그냥 지나치나 걱정했었는데 이런 말을 할 정도로 고모와 애착관계가 형성된 거구나. 네가 원하는 엄마는 어떤 모습인지 엿본 것 같아서 다행.

시간으로 따지면 막내 조카의 '다른 엄마는 안 그래요'라고 말하기 1년 전 큰 조카는 집을 나갔다. 말보다 행동으로 옮긴 큰 조카의 불만에 당황했다.
게다가 큰 조카를가 집을 나가고 나서야 내가 큰 조카딸을 애지중지 여겼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 했던 새로운 감정이었다.
왜 큰아이에게 너그럽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조용했던 아이의 큰 일탈로 나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뺨을 철썩하고 맞은 듯한 모멸감이 들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큰 조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나는 영화 25시의 앤서니 퀸처럼 입은 웃고 눈은 울고 있었다.

조카 손자는 어젯밤 시큰둥한 목소리로 '고모는 엄마가 아니잖아' 하고 귀에 속삭였다.
정확히는 고모할머니인 날 줄여서 엄마라고 부르던 손자.
낮에 어린이집 하굣길에서 만난 친구가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걸 나도 보았고 손자도 보았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씻고, 함께 자고, 함께 웃는 처지라 손자의 그런 말을 듣고나서 바로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응 맞아. 난 엄마가 아니야. 그런데 엄마이기도 해. 엄마가 회사에 일하러 가있는 동안은 고모가 엄마야. 네 이름이 정명이이고 마테오이기도 하듯이 고모는 이름이 두 개야 고모 엄마.
손자는 뭐 설명까지야 필요한가, 하는 얼굴로 빈 젖병을 무는 입모양을 몇 번 하다 잠들었다.
이 에피소드를 큰 조카에게 해주어야 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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